[연합시론] 피고인 인권 지켜야 재판 생중계 명분도 산다

입력 2017-07-25 19:39  

[연합시론] 피고인 인권 지켜야 재판 생중계 명분도 산다

(서울=연합뉴스) 대법원이 25일 사회적 관심을 끄는 1·2심 선고 공판에 대해 생중계를 허용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 주재로 대법관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아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기로 했다. 재판 중계에 대한 허가권자는 재판장이고, 원칙적으로는 피고인이 동의할 때에 한해 허가하기로 했다. 다만 피고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재판장이 중계방송을 허용할 수 있다. 개정 규칙은 8월 1일부터 적용된다. 대법원은 이번 결정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할 때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사법부의 국민 소통 등을 이유로 주요 재판의 중계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13년 3월부터 상고심 가운데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부 사건에 한해 생중계를 허용했고, 이번에 그 대상을 사실심인 1.2심까지 확대한 것이다.



대법원의 설명처럼 재판 생중계 확대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동안 법원은 1·2심 공판과 변론에 대해 녹음·녹화·중계를 불허해 왔다. 이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헌법 제109조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국정농단 사건 재판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이 본격화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중계를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5∼9일 전국 판사 2천90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응답자 1천13명 중 67.8%인 687명이 재판장 허가에 따라 재판의 일부 또는 전부를 중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선고 공판 생중계가 허용되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해 피고인 인권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실관계를 다투는 1·2심 재판에서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이나 개인정보가 노출됨으로써 사생활이 침해되고 인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고 공판에 국한하기는 했지만 재판 과정이 TV로 생중계될 경우 사실관계를 다투는 재판의 본질이 훼손돼 극단적인 경우 '여론재판'으로 흐를 수 있다고 지적도 나온다.



피고인 의사에 반해 생중계를 허용하는 기준도 사실 모호하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는 조건은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피고인의 인권 사이에서 법리적 균형을 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보호해야 할 권리의 구체성과 긴급성은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재판부의 숙고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런데 법정 방어가 절실한 피고인의 인권과 방어권이 침해당한다면 국민의 알 권리 보장 같은 좋은 명분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같은 맥락에서 재판 내용과 무관한 법정 장면이 무분별하게 방송되는 것도 최대한 피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사건 같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재판의 생중계를 허용할 때는 재판부가 합당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좋다. 당장 대법원의 생중계 허용 결정을 놓고도 정치권 반응이 극명히 엇갈렸다. 국민 여론도 갈라지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대법원 결정의 취지를 잘 살리려면 결국 재판부의 신중하고 공정한 판단이 전제돼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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