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피아니스트' 지메르만 "피아노 왜 들고 다니냐고요?"

입력 2017-07-26 00:00  

'완벽주의 피아니스트' 지메르만 "피아노 왜 들고 다니냐고요?"

"정경화와 녹음 땐 피아노 위치 10번씩 바꾸기도…매번 그렇진 않아"

25년만에 내놓은 솔로 음반은 슈베르트의 유작 소나타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완벽주의 피아니스트', '피아노 들고 다니는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1).

폴란드 출신의 이 피아니스트는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으로 악명 높지만, 그 이상의 완벽한 연주를 선보이며 최정상급 피아니스트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지메르만은 한국 팬들에게도 몇몇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는 2003년 첫 내한 당시 직접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연습용 액션(건반 부분)을 직접 공수해와 화제를 모았다.

당시 공연 장소였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무대 천장에 달려있던 로비 방송용 마이크를 '녹음용'이라고 착각하고 마이크 선을 자르려고 해 스태프들을 기절초풍하게 하기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레스피기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하면서 피아노의 위치를 10번이나 옮긴 것도 유명한 일화다. 기어코 만족할만한 녹음 결과를 얻어낸 그는 녹초가 된 정경화에게 "땡큐"라는 한마디 말만 남긴 채 총총 사라졌다고 한다.

지메르만은 26일 새 앨범 출시를 앞두고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수많은 제 공연 중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경화와 있었던 녹음 일화에 대해서는 "단 한 번 있었던 일이며 다신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정경화와의 녹음 과정을 물론 기억하고 있어요. 피아노와 바이올린 음향이 가장 잘 어우러지는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었죠. 하지만 그런 과정이 일반적인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이 제가 모든 공연에서 이처럼 행동한다고 믿을까 봐 걱정되기도 하네요."

그러나 그의 우려에도 불구, 그의 '완벽한 음악'에 대한 치열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콘서트홀의 소음과 녹음, 피아노 음향에 극도로 예민한 모습을 보인다. 이 때문에 그는 육중한 몸집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직접 운반해 세계 공연장을 누비고 있다.

2006년 미국 카네기홀 연주를 위해 미국 JFK공항에 입국했던 지메르만은 그의 피아노가 폭발물로 의심받아 크게 망가지는 '대형 사고'를 겪은 후에는 아예 피아노를 직접 분해한 뒤 현지에서 조립·조율하기도 한다.

그에게 직접 피아노를 나르는 과정이 번거롭진 않은지, 피아노란 악기 자체가 음악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다.

그는 "플루티스트에겐 왜 본인 악기를 들고 다니는지 묻지 않으면서 왜 피아니스트들에게만 같은 질문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운을 뗐다.

"좀 더 진지하게 답변을 해보자면 제가 언제나 피아노를 직접 갖고 이동하진 않습니다.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때 탄생한 작품들을 연주할 때만 제 피아노를 가져갑니다. 예를 들어 요즘 연주하고 있는 번스타인(1918~1990) 작품들은 지금의 피아노로 연주할 목적으로 쓰인 곡들이라 굳이 제 피아노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쇼팽, 슈베르트, 베토벤, 브람스 같은 작곡가 시대의 피아노와 지금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완전히 다르므로 악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시대악기(작곡 당시 연주되던 악기)를 사용하는 연주자는 아니다. 다만 그는 "작곡가가 작품을 쓸 때 사용했던 악기와 그 소리를 아는 것이 작품 해석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마지막 악장에서 베토벤은 페달을 거의 60마디 동안 지속하라고 표기해 놓았어요. 베토벤 시대의 피아노로는 60마디를 다 페달 처리해도 소리가 번지지 않겠지만, 현대 피아노로 하면 60마디는커녕 3초만 지나도 소리가 너무 울려서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을 겁니다. 제게는 이런 점이 엄청난 도전이에요. 단순히 악기를 바꾸는 것 이상의 노력으로 작곡가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해내려고 합니다."

녹음 작업에도 꼼꼼하기로 소문난 그는 최근 도이치 그라모폰과 손을 잡고 슈베르트가 36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기 직전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D.959', '피아노 소나타 D.960'을 녹음했다.

그의 피아노 솔로 앨범은 25년 만이다.

그는 "슈베르트와 베토벤의 유작이 된 소나타 작품들에 경의를 품어왔지만, 동시에 큰 두려움도 느꼈다"며 "이제야 이들 유작 소나타를 연주해볼 용기를 가질 때가 됐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서 '쇼팽 스페셜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먼저 떠올릴 음악팬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1975년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 19세 나이로 우승한 뒤 폴란드 국적, 쇼팽과 닮은 외모, 수준 높은 쇼팽 해석 등으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정작 '누군가의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것을 경계한다고 했다.

"쇼팽 역시 제게 다른 작곡가들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닙니다. 누군가에게 이런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죠. 물론 쇼팽은 제게 가장 친숙한 작곡가 중 한 명인 건 사실이지만, 제 스승께서는 제가 한쪽의 레퍼토리로 편중되지 않은, 조화로운 음악가가 되라고 늘 당부하셨습니다."

그는 다만 쇼팽 콩쿠르의 2015년 우승자 조성진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그는 "쇼팽 콩쿠르 이후에는 늘 '다른 참가자가 우승했어야 한다'는 뒷말이 나오곤 하는데, 조성진 우승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란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성진의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태도, 커리어를 구축해나가는 책임감 등을 높이 평가한다"며 "조성진이란 이름은 오랫동안 널리 기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sj997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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