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위기 판도 바꿀 획기적 개입" vs "리비아 주권 침해 우려"
(로마·서울=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김보경 기자 = 지중해를 건너 몰려드는 아프리카발 난민 부담에 휘청이고 있는 이탈리아가 난민밀입국 업자 단속을 돕기 위해 리비아 해역에 자국 해군을 파견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26일(현지시간) 로마에서 리비아 통합정부의 파예즈 사라지 총리를 만난 뒤 연 기자회견에서 "리비아가 난민밀입국 조직 등 인신매매 조직 퇴치를 위해 우리 해군 함정을 자국 해역에 파견해 달라고 요청해왔다"고 발표했다.
사라지 총리는 전날 프랑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중재로 이뤄진 평화협상에서 리비아 국토의 3분의 2가량을 장악 중인 칼리파 하프타르 군사령관을 만나 리비아의 무력분쟁을 종식하고, 내년 봄 최대한 빨리 선거를 치르기로 합의한 데 이어 이날 로마를 찾았다.
젠틸로니 총리는 "며칠 전 사라지 총리가 이런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고 소개하며 "현재 국방부가 이 요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회가 동의가 선행돼야 하지만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앞서 사라지 총리가 이끄는 리비아 통합정부는 지중해를 통한 유럽으로의 밀입국과 인신매매를 단속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이 벌이고 있는 '소피아작전'에는 자국 영해 접근권을 거부한 바 있다.
리비아에 근거지를 둔 인신매매 조직은 2014년 이래 유럽행을 희망하는 난민 수십 만명에게 돈을 받은 뒤 이들을 조악한 고무보트나 목선에 태워 이탈리아 해안으로 밀송,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박해를 피해 탈출이 절실한 중동과 아프리카, 남아시아 출신 난민들은 리비아 트리폴리 해안에서 목숨을 건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리비아와 이탈리아를 잇는 지중해 중부 루트에서 보트가 뒤집히는 사고 등을 당해 사망한 난민 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2%나 증가한 4천500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에만 난민 9만4천 명이 이 루트를 통해 이탈리아에 정착했고, 그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막대한 난민 유입에 따른 혼란이 가중되자 이탈리아 내에서는 이를 막지 못한 젠틸로니 총리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또 난민 수용 문제를 두고 이탈리아와 다른 유럽국가와의 긴장도 점점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 정부는 최신 감시 장비를 갖춘 해군 함정을 몇 척만 리비아 해역에 보내더라도 리비아 해안경비대가 리비아 해안을 떠나 지중해로 나서는 난민선을 단속해 자국으로 송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탈리아 정부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이탈리아 해군의 리비아 해역 파견은 현재의 지중해 난민 위기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국 해역에 군을 파견하는 문제를 두고 국내외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특히 리비아 영해로의 해군 파견은 리비아에 대한 주권침해로 해석되며 강한 반발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게 점쳐진다.
FT는 해군파견이 리비아에 대한 내정 간섭으로 비칠 수 있는 만큼 이탈리아가 명확한 개입원칙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이탈리아 해군의 개입으로 리비아 난민들이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이들이 다시 구타와 성폭행 등 박해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도 인권단체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EU는 현재 불법 난민선을 단속하는 리비아 해안경비대를 훈련시키고, 이들에게 순찰 함정을 지원하고, 리비아 현지에 난민센터 구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들의 행렬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국제 인권단체들은 학대와 살인, 노예화가 일상이 된 리비아 난민센터의 비인간적인 상황을 지적하며 리비아 당국을 도와 난민들의 유럽행 탈출로를 봉쇄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EU를 비난하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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