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스 드 발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13년 아프리카 테네리페섬에 머물던 독일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는 침팬지 무리를 주시했다. 쾰러는 공중 높이 바나나를 설치한 다음, 큰 상자들을 바닥에 흩어 놓았다. 골몰하던 침팬지 술탄은 상자들로 탑을 쌓은 뒤 그 위에 올라서서 바나나에 손이 닿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해결법을 경험한 적도, 이에 따른 보상을 받은 적도 없는 술탄의 '통찰'을 두고 쾰러는 '아하! 경험'으로 불렀다.
이처럼 동물도 고유한 감정과 생각, 인지(cognition) 능력이 있음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와 저서들이 국내에 속속 소개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영장류학자인 프란스 드 발(69)의 신간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원제: Are we smart enough to know how smart animals are?)은 이를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1982년 권력투쟁에 휘말린 침팬지의 잡담과 권모술수를 인간 정치인의 행태에 빗댄 저서 '침팬지 폴리틱스'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계속해서 영장류를 관찰하면서 동물 행동과 인지 연구에 힘쓰고 있다.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수천 년간 이어진 '사다리 걷어차기'에 주력한다.
인간이 맨 꼭대기에 있고 그 아래로 포유류, 조류, 어류, 곤충, 그리고 맨 아래에 연체동물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칼라 나투라이'(scala naturae·자연의 사다리)가 얼마나 허상인지를 다양한 예를 통해 보여준다.
자기 결정을 후회하는 쥐부터 인간의 얼굴을 알아보는 문어,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침팬지 등의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찼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인 유인원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의 인지 능력 사례를 열거한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인식하는 거울 테스트만 해도 인간과 대형 유인원 정도만이 통과했으나, 최근 돌고래와 코끼리, 까치까지 합격함으로써 자의식을 가진 동물로 인정받고 있다.
동물은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더 똑똑할뿐더러 심지어 인간이 동물보다 열등할 수도 있다. 20년 전 다른 곳에서 함께 살았던 돌고래의 휘파람 소리(돌고래에게는 인간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를 알아본 암컷 돌고래 베일리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책의 핵심은 인간의 기준에 따라 동물의 능력을 측정하고, 우열을 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있다. 종마다 생존에 필요한 능력이 다르게 발달했기 때문에 능력의 척도 또한 달라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가령 다람쥐나 까마귀에게 수를 얼마나 셀 수 있는지 묻는 것은 불공정한 게임이다. 대신 클라크잣까마귀는 거대한 면적의 땅 수백 군데에 잣을 2만 개 이상 숨겨 놓고 이를 대부분 회수한다. 수 시간 전 주차한 장소도 종종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과 굳이 비교하면, 이 능력에서는 클라크잣까마귀가 훨씬 우월한 셈이다.
세종서적. 이충호 옮김. 488쪽. 1만9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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