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성간 기자 =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는 기억이 완전히 지워져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기억은 저장돼 있는데 끄집어내는 기능을 잃은 것일까?
치매는 신경세포 표면의 단백질 베타 아밀로이드가 플라크를 형성하고 신경세포 안의 단백질 타우가 뒤엉키면서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신경세포를 파괴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치매 쥐'의 잃은 기억을 레이저로 되살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치매는 기억이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기억은 신경세포에 남아 있는데 다만 이를 인출하는 기능을 상실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신의학과의 크리스틴 데니 임상신경생물학 교수는 치매로 잃은 기억을 레이저 같은 외부 자극으로 되살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쥐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고 영국의 과학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가 26일 보도했다.
데니 교수는 유전자 조작으로 쥐의 신경세포가 기억을 저장할 때는 '노란색', 기억을 끄집어낼 때는 '붉은색'을 띠도록 했다.
그는 두 그룹의 이런 쥐를 만들었다. 한 그룹은 건강한 쥐, 다른 그룹은 치매 모델 쥐.
이어 기억력 테스트를 해 봤다. 레몬 냄새에 노출시킨 뒤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다시 같은 레몬 냄새를 맡게 했다.
그러자 건강한 쥐들은 전기충격이 올까 봐 공포로 몸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치매 쥐'들은 보통 쥐들에 비해 공포감이 절반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레몬 냄새와 전기충격 사이의 연관성을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두 그룹 쥐의 이러한 행동 차이는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에서도 나타났다.
건강한 그룹 쥐는 해마에서 '노란색' 신경세포와 '붉은색' 신경세포가 중첩돼 나타났다. 레몬 냄새-전기충격의 기억이 저장된 곳에서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는 증거다.
그러나 '치매 쥐' 그룹의 해마에서는 기억이 저장된 신경세포가 아닌 다른 신경세포에서 '붉은색'이 나타났다. 엉뚱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다는 증거다.
이는 치매 환자에게서도 흔히 나타난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는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데니 교수는 이어 광유전학(optogentics)이라는 첨단유전기술로 '치매 쥐'들의 레몬 냄새-전기충격의 기억을 되살리려 해봤다.
뇌의 광섬유망(fiber optic cable)에 푸른 레이저 빛을 비춰 '치매 쥐'의 '노란색' 기억 저장 신경세포에 자극을 가하자 레몬 냄새와 함께 공포로 몸을 떨었다.
이는 '치매 쥐'의 뇌에는 "잃은" 기억이 저장돼 있고 또다시 불러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데니 교수는 설명했다.
광유전학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또 뇌 신경세포에 레이저를 쏘는 것인 만큼 사람에게는 아직 사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심부 뇌 자극(deep-brain stimulation) 같은 기술이나 표적 약물도 치매 환자의 잃은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데니 교수는 말했다.
그의 다음 단계 연구는 '치매 쥐'와 마찬가지로 치매 환자에게도 기억을 저장하고 인출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치매 환자가 음악 같은 외부 자극으로 오래전 잃은 기억이 되살아난 사례도 있다.
이 연구결과는 '해마'(Hippocampus) 최신호에 발표됐다.
s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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