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현재로선 구체적인 계획 없다"
미국의 대북강경기조 속 북한 추가도발 여부 등 변수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내달 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연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남북 외교장관 회동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7일 ARF를 계기로 한 남북 외교장관회담 추진에 대해 "여건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북한을 포함한 북핵 6자회담 참가국 외교장관이 모두 초청되는 ARF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각각 참석할 예정인 만큼 어떤 형태로든 조우는 이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의미있는 회동 여부와는 별개다.
만일 남북 외교장관간 별도의 회동이 이뤄진다면 문재인 정부 출범후 첫 남북 당국간 대화가 될 수 있다.
강 장관은 지난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ARF를 계기로 한 남북회동 가능성이 높지 않느냐'는 질의에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그 계기를 최대한 활용해 볼 구상을 하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검토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를 발사한데 이어 추가 미사일 도발에 나설 움직임까지 포착된 상황에서 정부로선 남북 당국간 대화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압박 대오에 줄 신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정부 내 입장도 이전보다 다소 신중한 기류로 바뀌는 분위기다. 고위 관계자의 "여건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언급도 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하는 한편 인내심을 갖고 다양한 통로를 활용해 비핵화 대화 재개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해 나간다는 입장"이라고 밝혔지만 "현재로서는 특정한 계기에 남북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할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2000년대 이래 ARF를 계기로 한 남북 외교장관 접촉은 당시의 북핵과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2005년, 2007년의 경우 회담에 준하는 수준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고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과 2011년에는 간단한 대화 수준의 접촉이 이뤄졌다. 직전 박근혜 정부 때는 악수를 하고 의례적인 인사 한두 마디를 주고받는 '조우' 수준에 그쳤다.
이번 ARF를 계기로 한 남북 외교장관의 의미 있는 접촉이 성사되려면 북한의 도발 여부에 따른 상황 여건, 북한의 호응 등이 맞아떨어져야 할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서고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압박 드라이브가 강화한다면 정식 회담 수준의 회동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북한의 추가 도발시 미국은 ARF를 대북 압박 외교의 기회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미 엇박자 논란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ARF에 북한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할 것을 ARF 회원국들에 비공식적으로 요구했다는 일본 아사히신문의 보도대로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축출하기 위한 외교의 장으로 ARF를 활용하려 할 경우 남북간 유의미한 접촉은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미국과 핵문제를 논의하고 남북 간에는 교류·협력만 논의하겠다는 기조를 보여온 북한이기에 여건이 허락해 우리쪽에서 희망하더라도 북측이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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