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프랑스 혁명 영웅 폭우 때문에 단두대서 처형당했다

입력 2017-07-28 12:00  

[숨은 역사 2cm] 프랑스 혁명 영웅 폭우 때문에 단두대서 처형당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남부 유럽의 폭염 장기화로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분수대 가동이 중단되고 가정집은 제한 급수에 들어갔다고 한다.

로마 곳곳에 설치된 공공음수대 수도꼭지까지 잠근 탓에 물을 마시지 못한 관광객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로마 도심 청결과 노점상 지원을 위해 1874년부터 설치한 공공음수대는 현재 약 2천800개에 달한다.

기온 상승으로 물 수요가 더 늘어났는데도 식수 공급을 중단한 것은 1950년대 이후 최악으로 기록된 가뭄 때문이다.

로마 남쪽 시칠리아 주 등에서는 폭염 사태가 더 심각하다.






섭씨 40도까지 치솟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리조트 관광객이 긴급 대피하고 농작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6~7월 기온이 1994년 최악의 무더위와 비슷한 수준이고 폭염 일수도 7.2일로 예년 평균 4.5일보다 월등히 많다.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는 폭염 사태의 원인은 지구온난화인 것으로 세계기상협회는 진단한다.

기후변화나 악천후는 단순히 농작물이나 가축에만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인간 사회에도 재앙을 불러온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날씨가 국가 흥망성쇠를 좌우한 사례가 많다.

로마제국이 붕괴한 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기후변화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로마제국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집권한 기원전 27년부터 약 400년간 대체로 번창한다. 기후 온난화로 식량이 풍부해진 덕분이다.

로마는 유럽은 물론, 소아시아와 아프리카 북부 등 점령지에서 세금으로 곡물을 거두기 위해 제국 전역에 방사형 도로와 농산물 보관 창고를 만들고 막강한 군대도 육성했다.

로마의 황금시대는 5세기 들어 종말을 맞는다.

날씨가 추워져 흉작이 반복되면서 곡식 창고가 텅텅 비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탈리아 반도에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서로마는 476년 멸망하고 만다.

535~536년에도 유럽과 소아시아에서 이상저온 현상이 나타나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흑사병이 창궐해 아비규환을 이룬다.






찬바람과 우중충한 날씨 탓에 농사를 짓지 못한 사람들은 개, 고양이, 쥐 등을 잡거나 풀을 뜯어 연명했으며 여성이 어린 자식을 잡아먹는 사례도 있었다.

끔찍한 기근과 질병으로 시신이 어디서나 나뒹굴었으며 그렇게 죽은 사람은 수년 동안 약 30만 명에 달했다.

유럽을 강타한 기후 대재앙의 원인은 파푸아뉴기니 라바울 화산 폭발이다. 거대한 화산재가 오랫동안 떠다니면서 햇볕을 가린 탓에 기온이 뚝 떨어진 것이다.

당시 중국에도 대기근이 닥쳐 인육 요리가 전국으로 확산했다고 한다. 식량을 구하지 못하자 사람을 죽여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먹은 것이다.

고구려와 신라에서도 그때 가뭄이나 홍수로 흉년이 들어 수백 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1816년에는 지구에서 여름이 사라지는 이변이 발생한다.

1년 전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 탐보라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화산재가 퍼져 태양을 가린 탓이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자연재해로 기록된 탐보라 화산 폭발력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17만 개를 동시에 터트리는 위력과 맞먹는다.

탐보라 화산으로 생긴 기상재해는 심각했다.

농작물 재배가 어려워져 곡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프랑스와 영국, 스위스 등에서는 약탈과 폭동이 잇따랐고 식량난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인류 역사에서 날씨 변화를 예측하지 못해 국가나 개인 운명이 한순간에 뒤바뀐 사례도 많다.

그리스는 기원전 480년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았으나 날씨가 보호해줬다.

페르시아는 마라톤 전투 패배를 설욕하려고 병력 약 100만 명을 이끌고 그리스를 공격한다.

협곡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전설의 스파르타군 300명을 제압한 페르시아군이 거침없이 남하할 때만 해도 아테네 함락은 시간문제인 듯했다.

그리스 도시국가 가운데 수장 격인 아테네는 육상 전투에 승산이 없을 것으로 보고 병력을 살라미스 섬으로 집결시켜 바다 싸움을 준비했다.

해상전력도 불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페르시아 해군 함정이 1천237척인데 비해 아테네 연합군은 330척에 그쳤다.

하지만 날씨는 아테네 편이었다.

페르시아 함대가 살라미스 만에 정박했을 때 갑자기 폭풍이 몰아쳐 약 400척을 파괴했다.

전투 현장에서는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이 기적을 일군다.

강풍 방향과 시간을 예측하고서 유리한 장소와 시기를 택해 전투를 벌여 완승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의 이순신으로 비유된다.

과테말라와 멕시코 일대에서 1천 년 이상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마야문명이 사라진 것도 기후 때문이다.

서기 650년을 전후해 생긴 고대 마야 도시는 출중한 예술품과 정교한 문자, 정확한 달력 등을 남겼다. 저지대에는 도시국가를 건설하고 웅장한 피라미드도 만들었다.






당시 웬만한 유럽 대도시보다 발전했던 마야문명 인구는 1천만 명까지 급증했다.

이들이 부족한 농지를 개간하려고 산림을 대거 파괴하면서 토양 침식이 심각해졌다.

민둥산이 늘어나면서 수분 증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1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는 최악의 가뭄을 맞는다.

주민들이 굶어 죽거나 이주한 탓에 스페인 출신 코르테스가 1520년 황금을 약탈하러 왔을 때 인구는 약 3만 명에 불과했다.

아무리 발달한 문명도 무차별 환경 파괴 앞에서는 한순간에 몰락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례다.

일본이 13세기에 세계를 지배한 몽골군에 맞서 이긴 것은 가미카제(신풍) 덕분이다.

칭기즈칸 손자 쿠빌라이 칸은 일본에 투항을 제안했다가 거부되자 고려와 송나라 군함과 병력을 동원해 1274년과 1281년 바다를 건넌다.

하지만 그때마다 태풍이 불어 닥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군인과 전함을 대부분 잃고 퇴각했다.

일본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난 것은 신들이 바람을 보내준 덕분이라고 일본인은 이때부터 믿었다.

유럽 변방의 조그만 섬나라 영국이 1588년 유럽 맹주 스페인을 누르고 해양패권을 장악한 데는 '신교도 바람'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스페인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취임 이후 영국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다가 1588년 무적함대를 이끌고 전쟁에 돌입한다.

무적함대는 17년 전 지중해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제국 주력 함대를 쳐부순 것을 계기로 적수가 없다는 의미로 생긴 이름이다.

영국군은 해적 출신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지휘했다. 스페인 귀금속 수송선을 약탈해온 전과 때문에 지명수배된 인물이다.

유럽 최강 해군과 해적의 전쟁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난다.

영국 인근 해상에서 처음 격돌한 스페인군은 8일 동안 엇비슷한 싸움을 벌이다가 한순간에 치명타를 입는다.

강풍을 피해 칼레 항구에 정박한 군함 쪽으로 불 붙은 영국 배 8척이 돌진했기 때문이다.

스페인군은 화공을 피하려고 닻줄을 끊고 우왕좌왕하다가 영국군 공격을 받자 줄행랑을 놓는다.

퇴각 과정도 순조롭지 못했다. 수차례 강풍을 만나 군함 50척을 잃고 만 것이다. 군인 5천400여 명은 싸워보지도 못한 채 물에 빠져 죽는다.

영국군은 화공 선박 8척을 제외하면 단 한 척도 잃지 않았고 전사자도 150여 명에 그쳤다.

성공회를 국교로 삼은 영국에서는 무적함대를 무찔러준 강풍을 '신교도 바람'으로 부르게 된다.






영국군 화공작전은 중국 후한 말기 손권과 유비 연합군이 조조와 싸운 적벽대전을 연상케 한다.

조조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해 적벽에서 강풍에 배가 파손되지 않도록 서로 연결해뒀다가 풍향이 바뀌는 순간에 화공을 퍼부은 연합군에 대패한 전투다.

1789년 유럽 역사를 바꾼 프랑스 혁명도 악천후 영향을 받아 발생했다.

1년 전 프랑스는 일찍 찾아온 여름 때문에 가뭄이 장기화한 데다 우박까지 내려 대흉작을 맞는다.

기후재앙은 이듬해까지 지속하면서 빵값이 폭등했고,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함으로써 분노를 표출했다.

혁명을 계기로 수도 파리는 물론, 전국 대부분 지역 혁명광장에 설치된 단두대가 쉴 새 없이 움직여 루이 16세 왕을 비롯한 무수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리용에서만 2천 명 넘게 죽었고 낭트에서는 특수 제작한 배에 수천 명을 태워 수장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프랑스 서부 방데에서는 혁명 정부에 반대한 시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가 약 20만 명이 사망한다.

혁명 영웅 로베스피에르가 1793년 공안위원장을 맡으면서 공포정치는 절정에 이른다.

적폐 대상이라는 의심만 들면 누구나 단두대로 보낼 수 있도록 한 법률을 공포하고 혁명 동지까지 죽였기 때문이다. 국민공회(의회)를 대상으로 살생부까지 만들었다.

위기감을 느낀 국민공회는 반격에 나서 로베스피에르 체포를 결의한다.

이때 로베스피에르는 광장에 운집한 과격파 시민들에게 국민공회의 문제점을 알리고 공격을 촉구할 수도 있었으나 그런 기회를 놓치고 만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져 광장에 모인 군중이 모두 흩어졌기 때문이다.

화려한 웅변으로 군중을 선동할 수 없게 되자 호소문을 보내기로 하고 열심히 작성하던 도중에 체포돼 단두대로 끌려가 처형된다.

프랑스 외교관이자 정치인 탈레랑은 폭우가 내린 그 순간을 떠올리며 "비는 반혁명적이다"라는 유명한 논평을 남긴다.

전쟁의 신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가 완패한 것은 악천후 때문이다.

수많은 전투에서 눈부신 성과를 냈지만, 모스크바 동장군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러시아군이 도시 곳곳에 불을 지르고 퇴각한 탓에 추위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병사들이 동상과 질병에 걸려 한 달도 못 버티고 철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동원한 대규모 독일군도 러시아 동장군을 극복하지 못해 14만7천여명이 전사하고 9만1천여 명이 포로가 됐다.

인류 역사에서 국가와 개인의 운명을 뒤바꾼 기후는 인간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오늘날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에는 인간의 무차별적인 환경 파괴와 토목건설, 화석연료 남용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기술과 문명 발전에 힘입어 인구가 급증하는 현상도 기후변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기후변화는 원인이 무엇이든 로마제국이나 마야문명을 멸망시킨 무시무시한 힘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인류가 자연현상에 굴복해 멸망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무한성장 궤도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유엔이 1972년 인간 환경회의 슬로건으로 채택한 '하나밖에 없는 지구'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중국의 대문호 소동파(1037~1101년)의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상이야말로 유일한 천국이다. 세인이 이 사실을 믿는다면 지상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될 것이다"

had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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