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학의 전령사'…혜곡 최순우를 기억하다(종합)

입력 2017-07-28 18:16  

'한국 미학의 전령사'…혜곡 최순우를 기억하다(종합)

추모 문집 '그가 있었기에-최순우를 그리면서' 출판기념회 열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8일 오후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도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자그마한 고택 안마당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모였다.

전·현직 국립중앙박물관장 5명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인 이유는 혜곡 최순우(1916~1984)를 기리기 위해서다.

'우리 문화의 정수' '박물관원들의 아버지' '한국 미학의 전령사'…….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친 선생을 수식하는 말이다.

개성박물관 근무로 박물관과 인연을 맺은 최순우는 광복 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일하면서 유물 수집과 보존, 연구, 전시 등에 힘썼다.

'한국미술 5천년전' 등 국내외에서 숱한 화제를 뿌린 전시가 선생의 손을 거쳤다. 그의 글을 모아 1994년 펴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최고의 미술대중서 중 하나다.

최순우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와 교감했던 이들의 글 30여 편이 '그가 있었기에-최순우를 그리면서'라는 제목의 추모 문집으로 나왔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이날 최순우옛집에서 진행된 출판기념회에서 "전임, 신임 박물관장 5명이 자리했다는 데서 그 어른의 대단한 인덕을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인덕이나 학덕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분"이라면서 "우리 문화계의 거대한 중화학 공장이나 다름없었던 분으로 문화재 사랑의 주춧돌을 놓았다"라고 추모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혜곡 최순우 선생이) 2cm, 5mm라도 손을 대면 확 달라질 정도로 전시의 귀재셨다"라면서 "후배에게 일을 맡겨서 직접 터득하게 하시곤 했다"고 회고했다.

책에는 높은 안목과 뛰어난 글재주를 가진 미술사학자이면서 따뜻하고 열정적인 스승이자 동료였던 선생의 면면이 드러난다.

선생은 전통 공예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봤으며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집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주말마다 측량에 나서는가 하면 시골 장터에서도 우리 목기를 허투루 지나는 법이 없었다.

제자와 후배의 재능을 키워주려고 애썼던 선생의 면모도 살필 수 있다.

일례로 건축가 김수근은 1985년 선생 별세 직후 쓴 글에서 "30대 초반이었던 내가 만일 최순우 선생을 못 만났다면 한국의 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건축가 또는 건축기술자, 일반 설계가로서 머물렀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제9대 관장을 지낸 김홍남 혜곡최순우기념관 관장을 비롯해 필자들 면면만 보아도 고인이 우리 문화예술계에서 얼마나 큰 아름드리나무 역할을 했는지 느낄 수 있다.

193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인 최순우 옛집은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작고할 때까지 살던 집으로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제1호다.

혜곡최순우기념관 엮음. 진인진 펴냄. 295쪽. 1만5천 원.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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