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메이저 레이저·로드 등 출연…30일까지 이어져
(이천=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페스티벌의 '적'이라는 비가 온 탓인지, 아티스트 라인업이 아쉽다는 평 때문인지 28일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지산리조트에서 열린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이하 밸리록) 첫날은 다소 한산한 감마저 들었다.
밸리록 입구로 가는 도로는 막힘 없이 뚫렸고, 빼곡한 관객들 사이로 어깨를 부딪치며 걷지 않아도 됐다. 푸드존에서 먹거리를 구매하는 줄도 짧았다.
그러나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온 열성 관객들은 어둠이 깔리고 주요 출연자들이 잇달아 등장하자 여느 해 못지않은 함성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비가 그치자 무대 옆 산에서 흘러내린 안개가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운치를 더했다.
◇ 맨발로 객석에 내려온 로드·태극기 흔든 메이저 레이저
첫 내한에 강한 인상을 남긴 뮤지션은 뉴질랜드 출신 여성 싱어송라이터 로드였다.
21살의 나이지만 성숙한 외모에 고혹적인 눈빛이 매력인 로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토해내면서 마치 현대무용을 하듯 쉼 없이 팔을 움직이며 자유롭게 리듬을 탔다. 정형화된 춤은 아니지만 온몸으로 노래하듯 흐느적거리는 동작은 독특했다. 음악색도 이미지도 다르지만 언뜻 아이슬란드 여신 비요크가 연상되기도 했다.
로드는 '테니스 코트'(Tennis Court)를 시작으로 '마그넷츠'(Magnets), '400 럭스'(400 LUX) 등을 잇달아 부르며 "안녕하세요. 지산 밸리록", "한국은 처음인데 놀랍다", "행복한 밤이다", "아름다운 관객이다"라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교감했다.
가장 뜨거운 반응은 역시 그래미 어워드 2관왕에 빛나는 빅히트곡 '로열스'(Royals) 무대였다. 관객은 후렴구에서 코러스를 넣듯 자연스럽게 '떼창'으로 화답했다.
로드는 '라이어빌리티'(Liability)를 부르기 전 무대에 걸터앉아 혼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노래라며 이야기하다 울컥했고 관객이 일제히 휴대전화 불빛을 흔들자 감격했다. 이에 화답하듯 구두를 벗고 객석으로 내려가 관객이 준 화관을 머리에 쓰고, 자신의 이름이 써진 셔츠를 든 팬에게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이날 그는 정규 2집 '멜로드라마'(Melodrama)의 타이틀곡 '퍼펙트 플레이시스'(Perfect Places) 등 최신곡까지 13곡을 부르고선 "곧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무대를 내려갔다.
로드가 예열한 흥을 폭발시킨 것은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인 3인조 EDM(일렉트로닉댄스뮤직) 프로젝트 그룹 메이저 레이저였다. 지드래곤, 씨엘과의 협업으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프로듀서인 디플로를 주축으로 결성된 팀이다.
심장까지 울리는 전자음이 드넓은 공간을 파고들자 순식간에 현장은 대형 클럽으로 바뀌었다.
"코리아, 스크림"(한국, 소리 질러)이라고 외치자 관객들은 일제히 손을 치켜들고 머리를 흔들며 뛰기 시작했다.
관능적인 여성 댄서들이 비트에 맞춰 춤을 췄고, 현란한 조명과 그래픽 영상, 폭죽이 화려함에 방점을 찍었다.
이들은 '투 오리지널'(Too Original), '점프'(Jump), '린 온'(Lean On)을 비롯해 지난달 발표한 '노 노 베터'(Know No Better)까지 아우르며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입고 있던 상의를 벗은 뒤 무대 앞 관객들과 함께 셔츠를 하늘 위로 던지기도 했고, '메르가즘'(메이저 레이저+오르가즘)을 느낀 관객들이 단체로 춤을 추도록 리드했다.
또 무대 막바지 '강남스타일'의 리믹스 버전을 선보이고,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처럼 보이는 셔츠를 입고서 태극기를 흔들고,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과 손을 마주치며 아낌없는 팬서비스를 했다.
멤버들은 밸리록에서 방탄소년단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 록에서 EDM·힙합 등으로 장르 확장
밸리록 첫날을 '불금'으로 만든 것은 단연 메이저 레이저였다.
록 페스티벌 주최측들이 록 팬들의 비난 속에서도 대세가 된 EDM과 힙합 뮤지션들을 주요 라인업에 배치하는 이유다.
밸리록도 지난해부터 장르의 폭을 한층 넓히며 타이틀에 '뮤직'이란 단어를 끼워 넣었다. 올해도 래퍼 지코, R&B 가수 딘 등을 초대했다.
밸리록을 2년 연속 찾았다는 박승준 씨(35)는 "지난해 DJ 제드에 이어 올해도 EDM 아티스트가 헤드라이너로 섰다"며 "록 페스티벌이라기보다 이젠 음악 페스티벌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명칭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음악 장르를 차치하고 관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밸리록을 즐겼다.
다년간의 경험이 있는 관객들은 간이 의자, 돗자리, 텐트 등 캠핑용 장비를 챙겨와 잔디밭 등지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 앞에서 뛰어오르며 온전히 음악을 흡수하려는 열혈 팬부터 소풍 오듯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들까지 다채로웠다.
곳곳에 보물찾기하듯 숨겨놓은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권용주 작가가 설치한 7m 높이의 무지갯빛 인공 폭포에서는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졌다.
이날 총 3개의 무대에선 영국 밴드 슬로다이브와 아이슬란드 가수 아우스게일, 덴마크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을 비롯해 국내 밴드 잔나비, 넬 등이 올랐다. 밸리록은 30일까지 열리며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 영국에서 만들어진 4인조 가상 밴드 고릴라즈가 헤드라이너로 선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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