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로 용인 교수부인 살인사건 등 범인 검거
경찰 전담팀원 전국 71명…2000년 8월 이후 미제사건 270여건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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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개정 형사소송법(일명 '태완이법')이 시행된 지 이달 31일로 2년을 맞는다.
태완이법은 1999년 5월 20일 대구 동구의 한 골목에서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김태완(사망 당시 6세)군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인물에게 황산테러를 당해 49일간 투병하다 숨진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정작 태완군 사건은 법 시행 이전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시행 이후 중요 장기미제 살인사건 4건이 태완이법 시행 덕분에 해결돼 법 개정이 의미있는 일이었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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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8월1일 이후 발생 살인사건에 적용…태완군 사건은 빠져
태완이법은 형법상 살인죄, 즉 '사람을 살해해 법정 최고형이 사형인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이 뼈대다. 그러나 정작 태완군 사건은 피해자 이름을 딴 법 적용조차 받지 못한 채 영구미제로 남아야 한다.
앞서 2007년 12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는 종전 최장 15년에서 25년으로 늘었다. 그러나 시행 이전 사건에는 소급적용하지 않도록 조건이 붙어 법 개정 이후 발생한 사건에 한해 시효가 연장됐다.
이 때문에 1999년 발생한 태완군 사건은 법 개정 이후에도 시효가 15년으로 유지돼 2014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이후 2015년 7월31일 태완이법이 시행됐지만, 법 시행 전 발생한 사건은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경우에만 적용 대상으로 삼아 2000년 8월1일 밤 0시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만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태완군 사건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1986∼1991년 발생한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 1991년 실종됐다가 2002년 유골로 발견된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 영화 '그놈 목소리' 모티브가 된 이형호(당시 9세)군 유괴·살인사건 등 중요 미제사건도 영영 처벌할 길이 없어졌다.
법 시행 시점 기준으로 경찰이 파악한 태완이법 적용 대상 미제 살인사건은 273건이었다.
경찰은 태완이법이 시행되자 각 지방경찰청에 장기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을 공식 직제로 편성하고,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미제 살인사건은 전담팀이 넘겨받아 수사를 이어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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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미제 4건 법 시행 이후 검거…피해자 4명 넋 위로
태완이법은 시행 이후 중요한 성과를 여럿 거뒀다. 법이 없었다면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돼 처벌할 길이 없었던 장기미제 살인사건 4건의 범인들이 검거돼 억울하게 숨진 피해자 4명의 한을 풀었다.
2001년 6월 경기 용인 '교수 부인 살인사건', 2001년 2월 전남 나주 '드들강 여고생 성폭행 살인사건', 2002년 4월 충남 아산 '갱티고개 노래방 주인 살인사건', 2002년 12월 서울 구로구 '호프집 주인 살인사건'은 태완이법이 없었다면 해결이 어려웠을 장기미제 살인사건들이다.
용인 교수부인 살인사건은 법 개정 전이라면 2015년 6월 공소시효가 만료돼야 했다. 용인의 한 단독주택에 강도 목적으로 괴한 2명이 침입, 교수 부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교수에게 중상을 입힌 뒤 달아난 사건이다.
경찰은 5천여명을 용의 선상에 올려 수사했으나 범인을 특정할 단서를 찾지 못해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태완이법이 시행되자 과거 사건 발생 당시 수사팀 막내였던 형사가 14년 만에 재수사에 착수, 진범으로부터 자백을 받는 데 성공했다.
드들강 살인사건은 2001년 나주 드들강에서 여고생 A(당시 17세)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A양은 옷이 벗겨진 채 성폭행당하고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으나 초기에 용의자 검거에 실패해 장기미제가 됐다.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1년 앞둔 2015년 재수사에 착수했고, 태완이법 시행으로 이 사건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과거 용의선상에 올랐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된 인물이 범인으로 확인돼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노래방 주인을 살해해 유기한 뒤 카드를 빼앗아 쓴 아산 갱티고개 사건은 2002년 4월 일어났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전담팀을 꾸려 수사했으나 진범들은 당시 용의선상에서 배제돼 결국 소득 없이 사건이 미제로 남았다.
태완이법 시행 이후 재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범행 현장 인근 통화내역 1만7천여건을 다시 분석하던 중 피해자 업소에서 확보한 명함 95장 가운데 1장의 전화번호가 범행과 관련 있음을 확인, 번호 사용자를 검거해 자백을 받아냈다.
2002년 12월 서울 구로구의 한 호프집에서 발생한 여주인 살인사건도 태완이법이 아니었다면 올해 공소시효가 만료될 뻔했다. 작년 1월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한층 진보한 과학수사 기법을 활용해 증거를 확보한 뒤 범인을 검거했다.
◇ 미제수사요원 미덕은 '끈질김과 꼼꼼함'…수사기법 발달이 큰 도움
273건 가운데 4건은 숫자 자체로는 미미한 비중이지만, 장기미제사건이 일반 사건보다 훨씬 수사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의미는 작지 않다. 공소시효 폐지로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는 잡힌다'는 점을 부각하는 효과도 있다.
전담팀 설치와 수사기법 발달 등 미제사건 수사 여건이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점에서 남은 사건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줄 길도 열려 있다.
구로 호프집 사건이 발생한 2002년에는 지금처럼 폐쇄회로(CC)TV가 보편화하지 않았고, 당시 범인이 자신의 지문이 남았을 법한 곳을 수건으로 모두 닦아버려 용의자를 특정할 단서도 찾기 어려웠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는 깨진 맥주병에서 발견된 쪽지문(일부분만 남은 조각지문)이었다. 발생 당시에는 쪽지문 분석 기술이 부족했지만, 이후 과학수사 기법이 발달해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으로 쪽지문 주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족적(발자국) 분석기법도 사건 해결에 기여했다. 분석 결과 당시 범인은 뒷굽이 둥근 형태의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는 결론이 나와 용의자 신장을 추정할 수 있었고, 쪽지문 검색 결과와 이를 비교하자 용의자가 정확히 특정됐다.
드라마에서처럼 미제사건 전담팀에 프로파일러(범죄분석요원)가 정식으로 배치되지는 않았지만, 전담팀과 매번 회의를 함께하는 등 사실상 같은 팀원처럼 움직일 수 있는 여건도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만 장기미제사건 특성상 유족이나 주민 등 중요 참고인이 이미 사망했거나 기억이 흐려져 추가 증언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과거 범인 검거에 실패한 선배 형사들의 오점을 찾아야 실마리가 풀리니 마음도 편하지 않다.
조직 내 상급자들의 마인드도 중요하다. 여타 사건처럼 단기간에 성과를 내라며 압박하지 않고, 수사에 필요한 자원을 최대한 지원하면서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것이 수사팀으로서는 일하기 좋은 조건이다.
일선 지방청의 한 미제사건 전담팀 관계자는 "장기미제 수사에서는 단기간에 조급히 성과를 내려는 태도보다 시간을 두고 끈질기게, 그러면서 꼼꼼하게 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참고인에게서도 금방 뭔가를 얻어내려 하기보다 꾸준히 접촉하면서 친분을 쌓아 교감을 형성해야 결과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서 장기미제사건만 전담 수사하는 형사 인력은 71명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정원 72명에서 실제 근무인력이 1명 부족한 정도지만 넉넉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숫자"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력 증원을 요청하지만 조직 사정상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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