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대관령음악제'서 한 무대 오른 두 거장 "음악에 완벽함이란 없어"
(평창=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음악에 완벽함이란 건 없어요. 바이올린으로 신비롭고 기가 막힌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 그거 하나를 위해 평생 몸부림치고 있네요."(정경화)
"요즘도 늘 고민을 합니다. 더 나은 음악을 위해 제가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인지, 어디에서 타협해야 하는지를 두고 치열하게 저울질을 하죠."(스티븐 코바체비치)
29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9)와 피아니스트 스티븐 코바체비치(77)는 넉넉한 미소 속에서도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달라지는 눈빛을 보였다.
이들은 "머리가 많이 희끗희끗해졌다"며 웃다가도 이내 "예전처럼 15시간씩 지독하게 연습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두 거장이 연주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인 25년 만이다.
1980년대 자주 호흡을 맞추던 이들은 1992년 무대 이후 한동안 함께할 기회를 찾지 못하다가 지난 28일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저명연주가시리즈'로 오랜만에 조우하게 됐다.
이들은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선보인 25년 만의 무대에 대해 만족스러움부터 표했다.
"어제 무대는 백 퍼센트, 만 퍼센트 음악뿐이었어요. 우리가 음악을 이토록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놀랐습니다. 제가 손 부상으로 연주를 중단했다가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제 연주야말로 정말 '기적'이라고 느꼈어요."(정경화)
"정말 좋았던 연주였습니다. 언어에 비유를 해보자면 우리 둘 다 어떤 '악센트'나 '사투리' 없이 모국어를 말하듯 편안하고 자유로운 연주였어요."(코바체비치)
코바체비치는 콩쿠르 우승 등 특별한 계기로 스타가 된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1961년 런던 위그모어홀에서의 데뷔 무대 자체로 국제적 명성을 쌓아올린 피아니스트다. 특히 베토벤 등 독일 고전파 레퍼토리에 있어 빈틈없는 구조성과 지성 넘치는 해석으로 유명하다.
코바체비치와 정경화 모두 음악에 있어 완벽주의적 성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연주자들이다. 이들은 서로의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번에 코바체비치를 아주 오랜만에 만난 거잖아요. 그런데도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을 하더라고요. 마치 어제까지 연주를 같이했던 사람처럼 "너 이 구절은 이러이러하게 연주를 했던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니 제가 안 놀랄 수 있겠어요?"(정경화)
"제가 지휘자로 섰던 무대에 정경화가 협연자로 함께 한 적이 있어요. 호른 주자의 소리가 너무 커서 소리를 줄여보려고 노력했지만, 호른 주자가 "더 이상은 어렵다"고 손들어 저 역시 그 정도에서 마무리하려 했죠. 그런데 정경화는 끝까지 호른 소리를 줄여내고야 말더라고요.(웃음)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코바체비치)
코바체비치는 연주할 때도 까다롭게 환경을 살핀다. 이번 무대에서도 공연 시작 전 조명을 줄여달라고 부탁해 스태프들이 급히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또 음악제 측에 피아노 의자를 8cm가량 잘라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늘 37cm 높이의 피아노 의자에서만 연주를 펼친다고 한다.
그는 "피아노 건반과 손가락의 더 많은 '밀착'을 위해 낮은 피아노 의자를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악기를 더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접촉과 밀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낮게 앉으면 손 모양이 조금 더 평평해지면서 건반에 닿는 손가락 범위가 넓어지거든요. 타건을 위해 강약을 조절하는데도 이 자세가 더 도움돼요. 물론 다른 피아니스트들에게는 다를 수 있습니다.(웃음)"
코바체비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경화는 연신 "그래서 당신의 피아노에서 예전보다 훨씬 인간적인 소리가 난 것 같다"며 연신 흥미로워했다.
정경화는 "이래서 음악에 완벽함이란 없는 것 같다"며 도자기 장인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7살 때쯤 도자기 장인에 대한 동화를 읽었던 적이 있어요. 아주 유명한 도자기 장인이 있었는데 평생 만족할만한 도자기를 만들지 못해서 평생 스스로 깨버린 도자기가 호숫가를 채웠을 정도였대요. 그 장인은 결국 걸작을 빚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데, 도자기를 굽는 가마에 본인이 직접 들어가서 마지막 도자기를 완성해낸다는 이야기죠. 결국 저도 그 아름다운 도자기 하나를 빚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악기로 신비로운 색깔을 내는 데 제 모든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거 하나만큼은 제 인생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평생 몸부림치고 있는 거죠."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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