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덩케르크'와 소설 '군함도', 황석영의 '넘어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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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덩케르크'와 '군함도'·'택시운전사' 등 여름 성수기를 맞아 앞다퉈 극장에 내걸리는 화제의 영화들은 모두 근현대 역사적 사건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같은 사건을 주제로 한 책들도 여럿 나와 있다. 영화의 '원작'이 아닌 만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서술방식의 차이도 흥미롭다.
동명의 영화 개봉에 맞춰 출간된 '덩케르크'(교유서가)는 바다와 해군에 관한 책을 주로 쓴 에드워드 키블 채터턴(1878∼1944)의 역사서다. 전쟁사상 최대 규모로 꼽히는 '덩케르트 철수작전'의 배경과 경과부터 구출된 군인들과 작전에 참여한 민간인들의 심리까지 세밀하게 포착했다.
"영화적 경험의 집합체"라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말대로 영화 '덩케르크'는 관객에게 공감각적 경험을 통해 전장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독일군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고 군인 각자의 사연도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패퇴하는 병사들의 무력감과 쉴 새 없는 폭격에 대한 두려움, 영국 해협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는 삶에 대한 의지 같은 직관적 감정들을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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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터턴의 '덩케르크'는 작전을 세밀하게 수행하는 군 지휘관의 입장에서 쓰였다. 수십만 연합군 병력이 덩케르크 해안으로 속절없이 밀린 데는 연합군 일원이었던 벨기에가 배신에 가까운 항복선언을 했고, 스위스에서 룩셈부르크 국경에 이르는 요새 방어선 '마지노선'이 명성과 달리 허술했다는 배경이 있었다. 퇴각하는 프랑스군이 주요 교량들 파괴를 게을리한 실책도 작용했다.
연합군 병력 33만8천226명을 영국해협 건너로 수송한 대규모 철수작전은 히틀러가 덩케르크 해안을 향하던 기갑부대에 돌연 진격 중지를 명령한 '미스터리' 덕택에 가능했다. 책은 덩케르트 철수작전을 둘러싼 양측의 전술·전략만큼이나 영국 민간인들의 '애국적 참전'을 비중 있게 소개한다.
고작 10명 정도 태울 수 있는 보트를 몰고 덩케르크 해안에 도착한 항해사가 장교에게 "곧 돌아와서 좀 더 많이 태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는 식이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이야말로 가장 어렵고도 위험한 일을 냉정하고 단호하게 시도하려는 영국 국민의 타고난 기질에 부합했다."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 해군 장교 출신이고 작전을 성공한 직후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1940년에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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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로 불리는 인공섬 하시마(端島)에 징용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사연은 2015년 일본 정부가 하시마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 전체 2권으로 출간된 소설 '군함도'(창비)는 30년 가까이 군함도를 둘러싼 과거사에 천착해온 작가 한수산의 역작이다.
작가는 1989년 일본에 체류하던 중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읽고 군함도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피폭에 대한 작품을 쓰기로 했다. 하시마와 나가사키(長崎)에 십여 차례 방문하고 미국의 원자폭탄 실험지를 답사한 끝에 2003년 대하소설 '까마귀'를, 2009년에는 일본어판 '군함도'를 펴냈다. 지난해 출간된 '군함도'는 전작을 대폭 수정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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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시간 노동에 가스폭발과 낙반사고가 빈번한 지옥 같은 작업환경, 방값에 보험금까지 갖은 명목으로 급여를 줄이는 일제의 파렴치함. 영화와 소설은 모두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징용공들의 처참한 노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허구적 요소인 조선인들의 탈출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다. 영화 속 인물들이 블록버스터급 전투 끝에 하시마를 벗어나는 선박에 몸을 싣는다면, 소설은 탈출 이후 또다른 고난에도 상당한 무게를 싣는다.
바다 건너 나가사키 해안에 닿은 소설의 인물들은 조선소와 터널공사장 등지에 취업한다. 이들은 원자폭탄 폭격이라는 또다른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징용공들은 부상자들을 구호하지만 아비규환 속에서도 조선인이라는 멸시를 받아야 했다. 작가의 말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한국인 피폭자들이 살아야 했던 비참한 실상과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대두하고 있는 피폭 2세, 3세의 문제까지, 수면 아래 도사린 얼음덩어리에는 단순하지 않은 수많은 문제점들이 난마처럼 도사리고 있습니다. (…) 바로 이 때문에 어떤 주도적인 의사결정도 박탈당한 채 조선인 징용자들과 피폭자들은 야만의 시대를 살아야 했습니다."
다음달 2일 개봉하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전세계에 알린 독일 공영방송 NDR의 아시아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와 그를 헌신적으로 도운 택시기사 김사복의 이야기다. 소설가 황석영이 1985년 대표로 집필하고 지난 5월 개정판이 나온 광주민중항쟁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창비)에도 힌츠페터의 활약이 소개된다.
책에 따르면 힌츠페터는 1980년 5월19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에서 '계엄령 하의 광주에서 시민과 계엄군 충돌'이라는 단신 기사를 접하고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광주에 도착한 때는 항쟁이 절정으로 치닫던 20일 오전이다. 책은 "대부분의 외신 기자들이 21일에야 광주로 향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힌츠페터의 육감은 남달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외국 기자가 국내에서 취재하려면 국가홍보원에 신고해야 했다. 그러나 취재허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힌츠페터는 아예 신고를 하지 않고 광주로 잠입한다. 영화에서 소시민 택시기사 김사복은 딸과 함께 사는 집의 월세를 벌기 위해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김사복은 시민군의 시신과 부상자들의 신음이 가득한 병원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아버린 힌츠페터를 일으켜 세운다. 책은 학살현장을 목격한 힌츠페터의 충격을 이렇게 기록했다. "베트남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했지만 이렇듯 비참한 광경은 처음 보았다. 가슴이 꽉 막히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가끔씩 촬영하는 것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검문을 뚫고 광주를 빠져나간 힌츠페터는 도쿄 공항에서 필름만 넘겨주고 23일 다시 광주로 들어갔다. 26일에는 항쟁지도부가 외신기자를 대상으로 연 기자회견을 취재했다. 힌츠페터가 항쟁 이후 별도로 제작한 45분짜리 다큐멘터리는 1980년대 중반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성당과 대학가 등에서 비밀리에 상영됐다. 저자들은 이 다큐가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 구실을 했다"고 썼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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