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들여 김정호 동상 세웠지만…지역과 관련성도 부족
모텔 밀집 거리에 '포토존'…"숙박업소 앞에서 사진 찍으라는 건가"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모텔촌 + 5천만 원짜리 동상 = 여행자 거리?'
서울 성동구가 혈세 수억 원을 들여 왕십리역 인근에 조성한 '여행자 거리'가 '전시행정'의 산물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1일 성동구 등에 따르면 구는 지난해 시비 3억 원을 들여 '할리스 커피숍∼컬리넌 호텔'과 '힐모텔∼리전트모텔' 등 2개 구간 총 360m를 여행자 거리로 꾸몄다.
이를 위해 거리 입구에는 아치형으로 화려한 입구도 만들고, 바닥은 깔끔하게 포장도 다시 했다. 또 이곳이 '여행자 거리'임을 알리는 표지판도 세웠다.
구는 지난 연말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하고 "관광객들에게 좀 더 다양한 추억과 감동을 주는 여행 중심지가 될 것"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했다.
그러나 반년이 흐른 지금, 수억 원을 쏟아 만든 여행자 거리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모텔 밀집 지역이었다. 이 일대에는 숙박업소 20여 곳이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호텔'이라는 이름을 붙인 업소도 일반 모텔처럼 일정 시간 방을 빌려주는 '대실' 영업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곳을 직접 찾았더니 7월 말 8월 초 최대 여름 성수기임에도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거나 배낭을 멘 '여행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책가방을 멘 학생이나 나이 든 지역 주민만 삼삼오오 오갔고, 숙박업소를 드나드는 커플만이 가끔 눈에 띌 뿐이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구가 근본적인 콘텐츠 강화나 개선 없이 값비싼 조형물을 설치하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여행자 거리 조성을 위해 투입된 3억 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억4천500여만 원은 김정호 동상, 포토존, 안내 사인 등을 만드는 데 쓰였다.
특히 이 가운데 여행자 거리 입구 인근 오거리 한쪽에 세워진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선생의 동상을 만드는 데는 나란히 선 팻말과 합쳐 5천200여만 원이 들어갔다.
구는 "성동구청 앞 도로명이 고산자로라는 점에 착안해 여행자 거리를 지정하면서 왕십리문화공원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산자로가 이 일대를 지난다는 것을 제외하면 김정호 선생과 별다른 관련이 없다. 통상 실존 인물의 동상은 그의 고향이나 뚜렷한 족적이 있는 곳에 세운다는 통념과 배치되는 것이다.
더구나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동상은 이미 경기도 수원의 국토지리정보원에 설치돼 있다. 그가 대동여지도를 통해 국토 탐사에 끼친 공헌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성동구가 세운 김정호 선생의 동상이 특별히 뛰어난 조형미를 갖춘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그의 분신과도 같은 대동여지도는 바깥쪽에 한자로 '고산자 김정호 대동여지도'라는 11글자로만 존재를 드러냈고, 지도 안쪽은 글자나 그림 하나 없이 '반들반들' 민무늬로 되어 있어 관람객을 당혹스럽게 만들 뿐이다.
마찬가지로 5천만 원 가까운 혈세가 들어간 '아트 월'도 논란거리다.
구는 이 지역을 널리 알리고 관광 명소화한다는 이유로 포토존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트 월 3곳을 설치했다. 문제는 이 아트 월 가운데 일부는 모텔 밀집 지역 한가운데 있는 숙박업소 벽면에 세워졌다는 점이다.
모텔촌 숙박업소 앞에서 사진을 찍으라고 5천만 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포토존'을 만든 셈이다.
지나가는 한 시민은 "이곳에 포토존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이곳을 '여행자 거리'라고 하기에는 모텔 밀집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누가 여기서 사진을 찍을지 모르겠다. 지나친 세금 낭비가 아니냐"고 꼬집었다.
여행자 거리가 생겨난 지 반년이 넘었지만, 구는 수억 원이 들인 효과를 제대로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여행자 거리 전후 방문객이나 투숙객 통계를 따로 낸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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