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폭스파이어' '이토록 달콤한 고통'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일상의 불안과 부조리에 대처하는 양극단의 방법이 있다.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된 미국 작가들의 소설은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는 상반된 돌파구를 제시한다. 파국적 결말이 일치하는 건 우연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79)의 '폭스파이어'(자음과모음)에서 사춘기 소녀들은 자신들을 옥죄는 현실과 맞서 싸운다. 1950년대 미국 뉴욕주 한 소도시의 공립 중학교. 렉스와 매디는 골디·라나·리타 등 친구들을 모아 비밀조직 '폭스파이어'를 결성한다. 가난한 집안의 어린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적들을 응징하기 위한 갱단이자 아나키스트 모임이다.
첫 타깃은 수학선생 버틴저였다. 그는 여자아이 중에서도 유난히 약해 보이는 리타를 괴롭히고 희롱했다. 뒷줄에 앉아 힘깨나 쓰는 남자아이들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비굴한 기회주의자였다. 폭스파이어는 버틴저의 승용차에 페인트로 낙서를 한다. "나는 더러운 늙은이 으으으으음 계집들!!! 나는 수학을 가르치고 XX을 간질이지" 버틴저는 학교를 떠나야 했다.
첫 성공에 용기를 얻은 폭스파이어는 더욱 대담해진다. 도둑질부터 폭행까지 이들의 저항은 점점 범죄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힘없는 소녀들의 싸움이 거칠어질수록 파국은 가까워진다. 나중엔 납치사건에까지 얽히고 조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소설은 매디가 질풍노도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매디는 10여 년 뒤 우연히 마주친 리타에게서 렉스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건네받는다. 쿠바의 아바나 광장에서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을 듣는 관중들 속에 렉스가 있었다. 렉스를 제외한 대부분 조직원은 옛일을 추억으로 묻어두고 평범한 미국인의 삶을 살아간다. 사춘기 소녀들을 억압했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지 작가는 묻는다. 최민우 옮김. 452쪽. 1만4천800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1921∼1995)의 '이토록 달콤한 고통'(오픈하우스)에서 주인공 데이비드는 가상의 세계로 도피해 현실의 괴로움을 잊는다.
전도유망한 과학자인 데이비드는 애나벨이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데이비드가 택한 해결책은 분리된 두 개의 세상을 사는 것. 윌리엄 뉴마이스터라는 이름으로 둘만의 집을 마련하고 주말이면 그곳에서 애나벨과의 행복한 생활을 상상한다.
"밤이면 그는 2층 더블 침대에서 그녀와 같이 잠들었다.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주다 몸을 돌려 그녀를 꽉 끌어안으면 그의 욕정은 상상 속 여체의 무게를 느끼며 여러 번 절정에 도달하고도 그 이상으로 치솟았다." 계획대로 철저히 분리됐던 두 세계는 데이비드가 애나벨의 남편을 죽이면서 한데 엉키게 된다.
애나벨을 향한 데이비드의 마음은 사랑보다는 집착이다. 소설 역시 러브스토리가 아닌 심리 서스펜스 쪽이다. 데이비드의 이중생활은 작가가 창조한 사이코패스 캐릭터인 리플리를 떠올리게 한다. 1960년작인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리플리 5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 '재능있는 리플리씨'(1955)의 속편 격이다. 김미정 옮김. 368쪽. 1만4천원.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