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서·프리버스 옷 벗기고 '토사구팽'…비속어·막말이 화근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전격으로 해임한 앤서니 스카라무치 전 백악관 공보국장은 최근 불거진 백악관 권력 암투의 진앙이었다.
불과 10일에 불과한 '초단기' 재임 기간이었지만 월스트리트 출신인 그가 입성하자마자 백악관 내 권력 투쟁은 본격화했다.
가장 먼저 숀 스파이서 전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스카라무치 발탁 소식에 반발해 자리를 내놓고 백악관을 떠났다.
그는 지난 21일 스카라무치 임명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마자 즉각 사의를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의를 반려하면서도 스카라무치 임명 의사를 고수했고, 결국 스파이서가 대변인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정리됐다.
신임을 얻은 스카라무치는 트럼프 대통령과 상반된 견해가 담긴 과거의 트윗을 삭제하며 '코드 맞추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무분별한 총기 보유에 반대하는 글과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계획을 조롱한 트윗을 스스로 지운 뒤 "나는 얼굴이 두껍고, 우리는 미국인에게 봉사하는 대통령의 어젠다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앙숙인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을 옷 벗게 한 것은 권력 암투의 결정판이었다.
지난해 트럼프 대선캠프에서 선거자금 모금 역할을 맡았던 스카라무치는 대선 승리 후 백악관 선임 고문 자리를 노렸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1호 인선'으로 신망이 두터웠던 프리버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자 앙심을 품었다.
스카라무치는 지난해 11월 무렵 자신의 백악관 입성을 막은 부정적 소문과 보도의 배후에 프리버스가 있다고 의심했다.
그가 공보국장으로 백악관에 들어서자마자 프리버스 저격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스카라무치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대통령과 나는 모든 이에게 말하고 싶다. 백악관 내 유출자가 누구인지, 유출한 고위 관계자가 누구인지 매우 매우 잘 알고 있다"며 프리버스를 정조준했다.
특히 지난 27일 미 잡지 '뉴요커' 인터뷰에서는 "라인스는 망할 편집적 조현병 환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비속어도 서슴지 않았다.
프리버스는 그 다음 날인 28일 비서실장에서 곧바로 경질됐다.
프리버스와 스파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킬레스건인 '러시아 스캔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불평해온 터라 일찌감치 경질설이 돌았지만, 스카라무치의 백악관 입성이 촉매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득의양양했던 스카라무치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에 담아뒀던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을 신임 비서실장에 등용하자마자 '토사구팽'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암투를 지적하는 언론 보도에 지난 주말 그의 해임을 고심했고, 켈리 비서실장과 함께 그가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전했다.
스카라무치 해임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백악관 조직 일신을 위한 전권을 넘겨받은 켈리 비서실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4성 장군 출신인 그는 백악관에 군인 같은 규율과 질서를 불어넣기 위해 기용됐다는 게 정설이다.
켈리 비서실장은 지난 주말 주변 인사들에게 "스카라무치의 언론 인터뷰에 경악했으며, 이는 대통령에게 혐오스럽고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즉, 스카라무치의 '거친 입'이 결국 화근이 됐다는 것이다.
WP는 "스카라무치를 공보 라인에서 제거한 것은 백악관 문화를 바꾸는 동시에 비서진에게 그들의 발언은 대통령을 깊게 고려해야 한다는 신호를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거침이 없던 스카라무치는 결국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신세가 됐다.
k02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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