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대도시 50만·한국 70만·일본 10만…130만 동북3성 '탈출'
비즈니스 분야서 역량 발휘…정치·사회적 위상은 '제한적'
<※ 편집자 주 = 1992년 8월 24일의 한중수교는 중국동포(조선족)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그들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대대적인 '엑소더스'에 나서 동북 3성에서 동북아 3국으로 활동무대를 넓혔습니다. 낯선 땅에서 많은 성취를 이뤘지만 자녀의 정체성 문제나 고향의 공동화 현상 등의 새로운 과제도 안게 됐습니다. 연합뉴스는 한중수교 이래 25년간 진행된 조선족 사회의 변화를 짚어보고 향후 전망과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기획물 5꼭지를 송고합니다.>
(베이징·칭다오·도쿄·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베이징의 조선족은 자녀뿐만 아니라 고향의 부모님도 모시고 와서 함께 삽니다. 동북 3성에서 가족이 다 옮겨온 거지요. 이제는 여기를 고향으로 여기며 삽니다."
지난달 11일 베이징 왕징거리에서 만난 이주확 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은 달라진 조선족 사회의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에는 돈을 벌어 금의환향하려는 성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돌아가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중수교 이래 조선족은 전통적 거주지인 동북 3성을 벗어나 중국 주요 대도시와 한국, 일본 등에 새로운 집거지를 형성했다. 수교 이전에는 조선족의 97%가 동북 3성에 거주했으나 지금은 27%만 고향을 지키고 있다.
이에 따라 생활 기반도 농업 중심에서 제조업과 상업, 서비스업의 비율이 훨씬 높아졌다.
조선족 출신인 리상철 일본 류코쿠대 교수는 "'만주의 조선인'이 '중국의 조선족'이던 시대를 지나 '동북아의 조선족' , '글로벌 조선족'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농촌에서 도시로, 중국 떠나 해외로
조선의 백성들은 1860년대부터 기근과 수탈을 피해 중국으로 이주했고 일본 강점기에는 그 행렬이 더욱 늘었다. 중국 정부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등 동북 3성에 정착한 한민족을 '조선족'이라 칭했다. 1952년에는 지린성에 옌볜조선족자치주를 지정하면서 고유의 언어와 풍습을 허용했다.
동북 3성에 머물러 살던 조선족은 중국의 개혁개방과 한중수교를 계기로 내륙과 연해 도시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중수교는 조선족이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행을 택하게 하는 결정적 도화선이 됐다.
183만(중국정부 2010년 통계) 조선족의 중국 내 분포도를 보면 베이징 등 수도권 10만, 칭다오 등 산둥성 25만, 상하이 5만, 광둥성 5만 등 동북 3성 이외 지역에 50만 명이 산다.
해외로도 대거 빠져나가 한국에 70여만 명, 일본에 10여만 명, 미국과 유럽 등 기타 지역 5만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향인 동북 3성에는 50만 명도 남지 않았다.
◇ 재중 조선족 기업 1만8천개…하청 탈피 자체상품 생산
수교 초기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할 때 필수 고용 인력이 조선족이었다. 양국 언어와 문화를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시 주로 통역이나 중국인 노동자 관리 업무를 맡았던 이들은 사업에 빨리 눈을 떴고 날이 갈수록 창업자가 늘었다.
이장섭 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 교수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중국 내 조선족 기업은 1만 7천500개에 달한다.
한국의 '아가방'을 인수한 '랑즈', 상·하수도관 제조업체인 '흑룡강대천그룹', 펌프를 생산하는 '하얼빈경공림펌프유한회사' 등 3개의 조선족 기업이 중국 증시에 상장돼 있으며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2007년에 결성된 조선족기업가연협회(회장 표성룡)는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선양 등 중국 주요 도시에 34개 지회와 6천 개 회원사, 1만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족 기업은 초창기에는 한국 기업의 임가공이나 납품을 담당하는 하청업체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자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주류를 이룬다.
표 회장은 "조선족은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문맹률이 가장 낮고 대학진학률이 제일 높기에 개혁개방 물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며 "특히 1세대 기업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한중수교 이후 모국과의 교역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덕분"이라고 말했다.
조선족이 일본으로도 많이 건너간 것은 동북 3성에서 성장한 40대 이상의 대부분이 중·고교에서 제1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운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본에는 현재 800여 개의 조선족 기업이 있고 이 가운데 150개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산하 치바지회의 회원이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60%, 무역 및 서비스업 40%이다.
치바지회의 이태권 회장은 "재일 조선족은 학창시절 배운 일본어를 기반으로 주로 유학을 위해 건너왔다가 일부는 대학에 남고 나머지는 일본 기업에 취업하거나 창업한 경우"라고 말했다.
◇ 모국서도 약진…단순노무직서 전문직 등으로 다변화
동북 3성을 떠난 조선족이 가장 대규모로 이주한 곳은 모국인 한국이다.
이들은 초기에는 주로 공사장이나 식당 등의 3D업종에 종사했고 3∼5년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숫자가 늘어나고 세대가 교체되면서 학계·금융계·무역업계·문화예술계·법조계·공직자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또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가족이 모두 한국에서 사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부나 봉사활동 등으로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사업으로 성공한 조선족도 적지 않다. 한중무역협회(회장 김용선)에 따르면 국내의 조선족 기업은 1만여 개로 추산된다. 업종별로는 요식·서비스업이 70%로 가장 많고 무역·유통 25%, 제조업 5% 등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은 크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는 조선족 범죄 등의 영향이 크지만 사실 국내에서 외국인의 범죄율은 내국인보다 낮다. 또 외국인 중에서도 중국 출신의 범죄율은 7∼8위에 그친다. 조선족 내부에서 "전체적인 숫자가 많다 보니 보도되는 건수도 많을 뿐"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 일각의 분위기는 의외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용선 중국동포한마음협회 회장은 "중국에서는 학력 수준이 높은 우수한 민족으로 인정받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며 "모국의 냉대에 상처받은 나머지 '중국 공민' 의식이 강해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 "역할 확대 위해서는 역량 더 키워야"
조선족이 활동무대를 넓히면서 일각에선 이들의 역할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중일 3개국은 물론 북한도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족이 3개국의 가교 또는 남북통일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조선족 사회의 위상이나 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냉정하게 말해 중국에서는 여전히 발언권이 약한 '소수민족'일 뿐이고, 모국인 한국에서도 재외동포법이나 다문화가족지원법 대상에서 제외되는 '3등 시민'의 신세라는 것이다.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글로벌 기업을 선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리상철 일본 류코쿠대 교수는 "유대인처럼 경제적 성공 등을 바탕으로 주류사회에서 활약하며 영향력을 인정받아야 한중일 가교나 동북아 평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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