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제의에도 北 무대응…'김정은의 북한' 상대 새 정책 필요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최대 고민은 '김정은의 북한'을 어떻게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느냐는 것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체제 보장'과 같이 북한이 가장 듣고 싶어 할 법한 말을 하고, '적대 행위 중지'처럼 북한이 그간 가장 관심을 기울여 온 이슈로 회담을 제의해도 북한이 꿈쩍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오히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인 '화성-14형'을 잇따라 발사하며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일 "북한이 뭐라고 반응이라도 해야 그에 맞춘 전략을 짤 텐데 우리의 회담 제의에 아예 아무런 말이 없고 도발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6일 발표한 대북정책인 '신(新) 한반도 평화비전', 이른바 '베를린 구상'이 시동도 걸기 전에 한계에 봉착한 모양새다.
새 정부는 지난 두 달여간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우선 북한 붕괴론을 공공연하게 거론했던 과거 보수정부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북한을 안심시키려 했다.
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을 통해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며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북한에 가장 먼저 군사당국회담을 제의한 것도 북한의 호응을 끌어낼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라고 봤기 때문이다.
군사회담 의제로 제시된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 행위 중지'는 북한 입장에서는 대북 확성기 방송이나 대북 전단 등 이른바 '체제 존엄'을 지키는 데 해당하는 사항이어서 관심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정은 스스로가 지난해 5월 제7차 노동당 대회 중앙위원회 결산보고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충돌위험 제거와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당국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곧이어 북한 인민무력부는 실제로 회담을 제의했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의 군사회담 제의의 내용은 북한이 작년에 요구한 것과 대동소이하다"면서 "그런데도 북한이 아무런 반응이 없어 다소 의외"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북한이 작년 하반기부터 핵·미사일 고도화에 있어 본격적인 성과를 내면서 핵무기 완성을 통한 미국과 '대결전'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남북관계는 뒷전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역량을 거의 확보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궁극적 목표인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자신에 차 있다는 것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이며 장거리미사일 능력을 보유한 국가로 인정받고 미국과의 대화로 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처럼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노골화하는 상황에서는 우리 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운전자론'은 자칫 공허한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화와 제재' 투트랙을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북이 대화에 호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거세지는 분위기와 맞물리면 우리의 방점도 '제재'에 크게 실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북한과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운신의 폭은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인사들이 '김정일의 북한'만 상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짜다 보니 '김정은의 북한'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군다나 시장의 활성화로 북한 경제는 나아지고 있고 한국은행은 2016년 북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3.9% 증가한 것으로 추정했다.
인도적 지원 정도로 북한을 회담 테이블로 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북한'을 상대하기 위한 새 대북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작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부재하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에 대해 모른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라며 "일단 북한과 만나야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이며 그래서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정식 회담 제의에 전혀 응하지 않으면서 대북특사 파견 필요성도 대두하고 있다. 특사를 통해 우리의 '진정성'을 설명하고 북한이 원하는 바를 확인하자는 취지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사전 조율이 필수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8월에 한미연합훈련이 지나면 정부가 물밑 접촉이나 특사파견을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면서 "북한도 9∼10월 되면 국면전환 전략을 구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transi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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