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공개 사진을 돌아보니….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지난달 초 독일에서 열린 G20 단체 기념촬영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오른쪽 맨 끝에 서 있는 모습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다자간정상회의는 행사장 입장 순서, 자리 배치 등을 정하는 '의전서열'이 작동합니다. 국제회의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참가국의 알파벳 순서나 재임 기간 등에 따라 순서가 정해집니다.
2012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APEC 단체 기념촬영에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맨 왼쪽 끝에 선 적이 있습니다.
'가운데', '중앙', '복판', '중심', 'CENTER'. 모두 비슷한 말입니다. 사람들의 선호도도 대체로 비슷할 것입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그는 한가운데 있습니다. 북한이 여러 매체를 통해 공개하는 사진 중 아래 사진을 먼저 보시죠.
한가운데는 당연히 김 위원장입니다. 건물 위의 깃발을 잘 보십시오. 조작의 가능성이 보일 정도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휘날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깃대에서 가상의 선을 수직 아래로 그으면 정확하게 김 위원장에 도달합니다. 뒤편 건물을 분할해봐도 놀라우리만치 엄격한 균형과 대칭을 유지합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은 항상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등이 공개하는 사진에서 그는 예외 없이 중앙을 고수합니다.
동영상의 경우 좀 덜하기는 하지만 정사진은 '중앙 보존의 법칙'을 끈질기게 지키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환호하거나 좋아할 때 모습입니다.
경기장이나 행사장을 찾아 관람할 때도
참배는 물론 공식적인 대회에서 보고할 때는 당연합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배 위에서 찍은 사진에서도, 혹은 아이들과 함께할 때도,
시설물이나 공장 등을 시찰할 때도 그의 위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 보도사진에서 '뉴스피플'(특히 정상)의 위치는 현장의 특성과 뉴스의 흐름에 의존합니다.
때로는 주인공을 가운데 두지 않음으로써, 다른 참석자나 장소의 특성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을 때 뉴스피플은 한쪽 끝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뉴스 흐름에 따라 일그러진 표정이나 굳은 표정, 때로는 참담한 표정을 의도적으로 찍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보도'와 '선전'의 차이입니다.
북한의 모든 매체가 보여주는 뉴스는 보도가 아니라 선전입니다. 한가운데 위치한 '지도자'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인위적인 존경과 복종을 끌어냅니다. 세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동안 북한에서 공개한 김 위원장의 사진을 찾아보면 양자 악수 사진은 드뭅니다. 악수할 때는 한가운데를 차지하기 어렵죠. 어렵게 찾은 사진에서도 김 위원장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북한이 지난달 29일 새벽,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을 발사했습니다.
이날 조선중앙TV가 대대적으로 공개한 영상을 보면 특이한 장면을 하나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북한 매체가 공개한 김 위원장의 모습을 돌아볼 때 다소 의외입니다.
어두운 새벽, 미사일의 발사를 지켜보는 김 위원장의 뒷모습에서 은연중에 비장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말 정밀 유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장면에서는 뒷모습에다가 '중앙'을 벗어나 한편으로 치우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얼마나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지, 또 얼마나 자랑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선전'에 입각한 북한 체제의 특성이라는 생각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북한이 이런 선전을 통해 진정 우리를 위협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심각하고 정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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