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 사야카 장편소설 '소멸세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일본 작가 무라타 사야카(村田沙耶香·38)는 소설 '소멸세계'(살림)에서 현대 일본 사회의 '평행세계'를 가정한다.
제2차 세계대전 여파로 성비 불균형과 저출산이 가속화한 일본에선 더이상 섹스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인공수정 출산이 대부분이고 섹스는 불결한 행위로 취급된다.
연애와 사랑·결혼의 상관관계는 없다. 인간과 연애하는 경우도 아직 있지만 허구의 인물과 즐기는 연애가 대세다.
결혼을 해도 각자 연인을 따로 두고 연애한다. 부부는 가족이지 애인이 아니다. 당연히 부부 사이 성관계도 없다. "사랑과 성욕은 가정 밖에서 처리하는 배설물 같은 것이다."(95쪽) 가족은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한 일종의 경제공동체 기능만 한다.
일본 특유의 청결함과 효율 추구가 극에 달한 듯한 이 가상세계에 주인공 아마네는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자신이 인공수정이 아닌 '교미'를 통해 태어난 사실을 알게 된 어린 시절부터 인간과 연애하고 섹스하며 본능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작가는 아마네 부부가 이주한 실험도시 지바를 통해 가족제도를 본격 해체한다. 컴퓨터로 선정된 주민은 매년 12월24일에 일제히 인공수정을 한다. 태어난 아이들은 센터에 맡겨져 모든 어른의 보살핌을 받는다. 남성도 인공자궁을 이식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가족제도는 이런 '에덴 시스템'으로 대체된다.
남편이 출산에 성공하며 겉으로는 실험적인 제도에 성공적으로 편입한 것처럼 보이는 아마네. 그러나 인간을 사랑하고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한 본능은 에덴 시스템도 어쩔 수 없다. 아마네는 그런 본능에 따라 자신을 낳아 기른 어머니에게 말한다.
"엄마, 나 무서워. 어디를 가도 그놈의 '정상'이 계속 쫓아오잖아. 난 그냥 비정상으로 살고 싶은데, 어디를 가도 쫓아와서 어떤 세상에 있어도 나는 정상일 수밖에 없어."(272쪽)
소설은 지난해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편의점 인간'과 마찬가지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작가는 "출산과 섹스가 반드시 직결되어 있는게 아니라면?"이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인구절벽 위기에 국가적으로 대응하며 은연중에 여성을 출산 도구로 인식하는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고은 옮김. 292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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