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동원해 일자리 창출·질 제고…소득재분배도 역점
혁신산업 발굴 유인 적어…"R&D 투자 지원 축소는 신중해야" 지적도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새 정부가 임기 첫 세제 개편의 방향을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소득재분배로 잡았다.
이번 세법개정안은 대기업보다는 가계와 중소기업에서 미래 성장의 동력을 찾겠다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의 연장선에 있다.
일자리를 만드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되 특히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유도함으로써 일자리 질 개선에도 주력했다.
대기업·고소득자에게는 세금을, 빈곤층에게는 지원금을 늘려 빈부 격차를 줄이고 동시에 새 정부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도 확보하겠다는 구상도 담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중소·중견기업 지원과 부자 증세에 편중돼 생산성 향상 지원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불필요한 세제 혜택은 줄이되 미래 먹거리 발굴을 도울 수 있는 투자 지원 축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경기 침체→실업→소득 감소' 악순환…저성장 고착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철강 등 우리나라 전통 주력산업의 쇠퇴는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었고 이는 3%를 밑도는 저성장 기조의 원인이 됐다.
경기가 오랜 기간 답보를 거듭하면서 경기 후발지표인 고용시장의 한기도 장기화하는 모양새다.
청년실업률은 2015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2년 연속 10%에 육박하며 사상 최악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올해 들어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용의 질을 들춰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상대적으로 질이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제조업 취업자 수는 올해 2분기까지 1년간 내리 감소한 반면 자영업자는 반대로 같은 기간 연속 증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자리의 위기는 곧바로 가계 소득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해 연간 가구당 월평균 소득 증가율은 근로소득 중심으로 급격히 둔화하면서 전년보다 2003년 이후 최소폭인 0.6% 찔끔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일자리 문제에서 비롯된 위기는 특히 저소득층에서 심각하다. 소득 기반이 취약한 저소득층일수록 실업의 고통이 더 컸다는 것이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지난해 월평균 소득은 1년 전보다 5.6% 감소하며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결국 소득 5분위 배율 등 분배지표도 줄줄이 뒷걸음질 쳤다.
가계 소득 기반이 취약해지면서 경제 성장의 중요한 동력인 내수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가 2일 내놓은 세제 개편안은 부자 증세 등을 통한 소득재분배로 세입 기반을 늘리고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소득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해 저성장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제개편은 세입 기반 확충, 조세 정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했다"며 "저성장 고착화, 양극화 심화 등에서 나오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기업·고소득 계층이 사회통합, 상생협력을 위해 기여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 '일자리'로 끌어주고 '재분배'로 밀어주고…전방위 소득 지원
이번 세법개정안의 두 축은 일자리 창출과 소득재분배로 구성됐다.
일자리 세제는 주로 고용 잠재력이 큰 중소기업의 고용을 유도하고 저임금·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취약계층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난해 고용 관련 조세지출의 67%를 차지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는 지원 요건 중 투자 연계 요건을 삭제한 청년고용증대 세제로 재편됐다.
이전까지 고용을 늘려도 투자가 늘지 않으면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고용만 늘려도 1인당 최대 1천만원의 세금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창업 5년 이내 중소기업이 고용을 늘리면 증가율에 따라 최대 50%까지 추가로 법인세·소득세를 줄여주는 안은 창업기업의 높은 고용창출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겠다는 취지에서 나왔다.
지난해 중소기업청 등 조사 결과를 보면 창업기업은 전체 중소기업 종사자의 약 40%에 달하는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중·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유도할 수 있는 안도 쏟아졌다.
평균 이상을 초과하는 임금 증가분의 10%만큼 세금을 줄여주는 근로소득증대세제는 적용 대상을 연봉 1억2천만원 미만에서 7천만원 미만으로 좁혀 저소득층에 혜택을 집중했다.
소득에 비해 임금·상생협력기금 지출이 적은 대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도 연봉 7천만원 미만 직원의 임금을 올려주면 세금이 더 많이 줄어들도록 재설계됐다.
소득재분배는 상위계층에 대한 혜택을 줄이고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늘려 한계가구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후 지원 중심으로 설계됐다.
소득재분배를 위한 '부자 증세'안은 소득세 과세표준 5억원 초과 구간과 법인세 과표 2천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세율을 각각 40%→42%, 22%→25%로 상향하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대주주 주식의 양도소득에 대해서는 차익이 많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누진제가 도입됐고 자진 신고만으로 상속·증여세를 깎아주는 신고세액공제는 공제 폭을 7%에서 3%까지 단계적으로 줄여가기로 했다.
반면 빈곤 탈출을 돕는 근로 장려금은 지급액을 약 10% 늘리고 미혼 노부모 부양자와 다문화 가구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지원 요건을 완화하는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확대했다.
월세 세액공제율도 10%에서 12%로 인상하고 전통시장·대중교통 사용분에 대한 공제율도 최대 40% 늘려 주거·민생 안정에도 도움을 주기로 했다.
◇ 고소득자·대기업 세부담 증가분, 전년의 8.6배 달해
정부는 이번 세법 개정으로 고소득자·대기업의 세 부담이 전년보다 연간 6조3천억원 늘어나는 반면 서민·중산층·중소기업은 8천억원 줄어들어 연간 5조5천억원의 세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정부가 세제를 개편하면서 내놓은 세 부담 변화 전망과 비교하면 고소득자·대기업 세부담 증가분은 지난해(7천252억원)보다 무려 8.6배나 커진 것이다.
서민·중산층·중소기업 세부담 경감분도 지난해(3천805억원)보다 2배 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나 대조를 이뤘다.
정부는 지출 구조조정만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세수 증가분으로 새 정부의 정책 실현을 위한 재정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 부총리는 "올해 세제개편과 세수 자연증가분을 고려하면 세수 측면에서 감당할 부분은 큰 걱정은 없다"라며 "각 부처에서 예산 요구가 많아 세출 구조조정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입장에도 새 정부가 정책 추진을 위해 제시한 재원을 마련하기에 이번 세제개편만으로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은 "새 정부의 정책 수행을 위해 연간 5조5천억원의 세수 효과가 충분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며 경제 위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출 구조조정 노력과 함께 적자재정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번 세제개편이 주로 중소기업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과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한 대기업 혜택 축소를 중심으로 짜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유인책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눈에 띄는 신성장 동력 지원은 일부 창업업종의 세액 감면율 확대, 사내벤처 지원 등이며 전폭적인 투자 지원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 세입 기반 확충을 위해 대기업의 R&D(연구개발) 비용,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줄줄이 축소됐다.
전 한국세무학회장이었던 홍기용 인천대 경영대학장은 "R&D 투자세액공제, 설비투자세액공제 축소 등은 미래수익창출을 위한 국제경쟁력 제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축소조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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