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시작 후 4개월만에 직접 진술…시간관계상 중단 후 3일 오전 속행
화면 가리키는 등 침착…"다시 질문" 요청도…방청객·취재진 법정 만원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이보배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수백억원대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일 자신의 혐의에 대해 처음 입을 열었다.
지난 4월 7일 정식 재판이 시작된 이래 넉 달 만에 이뤄진 피고인 신문은 총 5시간 넘게 이어졌으나 시간 관계상 모두 마치지 못하고 중단됐다. 이번 재판은 50회째 공판이다. 법원은 3일 오전 재판을 속개해 피고인 신문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발언한 것도 지난해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 청문회 이후 처음이다.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 4시 35분 자신의 피고인 신문 차례가 되자 편의상 재판부를 마주 보는 증인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함께 기소된 피고인들 가운데 마지막 순서였다.
구속 상태지만 매번 사복을 입고 나온 이 부회장은 이날도 흰색 와이셔츠에 정장 차림으로 출석했다.
이 부회장은 재판부가 "불리한 내용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진술 거부권을 고지하자 "네"라고 답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공동 피고인인 최지성 전 그룹 미래전략실장이 신문 받을 때만 해도 가끔 턱을 괴는 등 다소 여유 있는 모습이 포착됐지만, 본인이 직접 질문을 받자 평소의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이 부회장은 신문 초반 긴장한 듯 헛기침을 하거나, 특검 질문을 놓쳐 "다시 질문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상황에 적응한 듯 이후 특검 질문에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과 이 부회장의 면담 내용을 정리한 문건을 실물화상기로 제시하며 질문하자, 이 부회장은 화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 부분은 내가 말한 것 같지 않다"고 적극적으로 반박 답변을 내놓았다.
이 부회장은 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매각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려는 미전실 결정에 자신이 반대 의견을 냈다고 길게 설명했다.
그는 "(합병이) 전자였으면 더 확실하게 얘기했을 것"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한 뒤 "직원들이 회사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 경쟁력을 쌓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삼성그룹이나 미래전략실 내에서 자신의 지위·위치를 묻는 특검 질문에는 "저는 한 번도 미전실에 소속된 적이 없다"며 "다만 제 자신이 삼성전자 일을 계속 해왔지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다른 계열사 업무에 대한 관심이나 책임감은 조금 늘었다"고 대답에 뜸을 들이기도 했다.
흥분한 모습을 보인 대목도 있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3차 독대 전후 사정을 설명하던 중 "회장님(이건희 삼성 회장)이 살아계실 때부터"라고 말했다가 다급히 "회장님이 건재하실 때부터"라고 말을 정정했고, 이에 몇몇 방청객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재판은 오후 11시 20분께 종료됐다. 저녁 식사와 휴식을 위해 2차례에 걸쳐 1시간 45분 가량 휴정한 시간을 빼면 이 부회장의 신문 시간은 총 5시간에 달했다. 특검 측 주(主)신문은 끝났고 변호인 반대 신문은 다 마치지 못했다. 이에 재판부는 3일 오전 10시 재판을 열어 변호인의 반대 신문을 이어서 진행하기로 했다.
재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은 이 부회장의 육성 진술을 들으려는 방청객과 취재진, 삼성 관계자들로 만원을 이뤘다. 외신 기자까지 몰리는 등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일반 방청객들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침 6시부터 서초동 법원청사에 도착해 입장 순서를 기다리기도 했다. '자리 쟁탈전'이 치열해 방청객 자체적으로 임시 대기표를 만들어 '새치기'를 막았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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