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초고소득자와 대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일자리 창출과 소득재분배에 활용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부자증세' 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정부는 2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고 소득세법, 법인세법, 상속·증여법 등 13개 세법의 개정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개정안 중 증세 관련 주요 내용은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 인상 ▲대주주 주식의 양도차익 과세 강화 ▲상속·증여세 신고세액 공제 단계적 축소 ▲대기업의 각종 세액공제 축소 등이다. 한편으로 고용증대 세제 신설,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시 세액공제 확대 등 현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세제 혜택도 대폭 늘었다. 일하는 저소득 가구를 지원하기 위해 근로 장려금 지급액을 최대 250만 원으로 확대하고 월세 세액공제율도 12%로 인상하는 등 서민·중산층에 대한 세제 혜택 역시 강화했다. 개정안은 입법예고와 8월 말 국무회의를 의결을 거쳐 9월 정기 국회에 제출된다. 국회 통과 시 내년부터 적용된다.
세목 별로 보면 소득세의 경우 연간 5억 원 초과 구간의 명목 최고세율이 현재 40%에서 42%로 2%포인트 오른다. 이번 인상으로 세 부담이 늘어나는 납세자는 9만3천 명(연간 2조2천억 원)으로 추산된다. 소득세 최고세율 42%는 1995년(4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법인세는 과표 2천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세율을 기존 22%에서 25%로 3%포인트 인상했다.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올린 것은 1990년(30%→34%) 이후 28년 만이다. 최고세율 부과 대상 기업 수는 129개(연간 2조5천600억 원)로 전체 법인 약 59만 개중 0.02%로 집계됐다. 현재 20%인 대주주의 주식 양도소득세율은 3억 원 초과 구간에서 25%로 5% 포인트 높아진다. 이들 세목의 증세 대상이 극소수라 '핀셋 증세'란 얘기도 나온다.
정부는 증세로 확보한 재원을 영세기업 일자리 증대와 취약계층 생계 지원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고용증대 세제를 신설해 투자가 없더라도 고용이 늘어날 경우 중소기업은 1인당 연간 700만~1천만 원, 중견 기업은 500만~700만 원, 대기업은 300만 원을 각각 공제해준다. 일자리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중소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액을 현행 1인당 700만 원에서 1천만 원으로 확대한다. 서민 재산형성을 돕기 위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이자 소득 비과세 한도도 서민형은 500만 원, 일반형은 300만 원으로 늘어난다. 김 부총리는 "올해 세법개정안은 저성장·양극화 극복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소득재분배 개선에 역점을 두면서 재정의 적극적 역할 수행을 위한 세입기반 확충에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세법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금이 연간 6조3천억 원가량 증가하는 반면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 세금은 8천억 원가량 감소해 연간 5조5천억 원의 세수가 늘어날 전망이다. 현 정부 임기 5년으로 계산하면 추가 세입이 24조 원이 된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들 재원 178조 원의 13.5%에 해당한다. 재원 마련에 고심하는 재정 당국의 부담은 어느 정도 덜게 됐지만 충분한 세수 증대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부자증세가 조세 부담의 형평성 개선에는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현 정부의 복지정책 방향이 사실상 '중부담 중복지'임을 고려하면 적정 수준 세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직후 증세가 거론되지 않다가 최근 몇 주 사이 여당이 주도하고 정부가 뒤따라가는 식으로 증세가 추진된 것은 보기에 좋지 않았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권이 증세를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며 반대를 분명히 하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법인세 인상이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기업활동을 위축시켜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법안심의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이 깊이 있게 논의돼야 할 것 같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