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물 폭탄' 맞은 이후 접수된 야생동물 피해면적 1만1천여㎡
"가뭄·장마 속에 애지중지 농사지었는데 쑥대밭" 눈시울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침수된 논과 축사를 정리하느라 2주일간 밭에 못 가봤더니 멧돼지가 옥수수를 몽땅 뭉개놨어. 사료로도 쓸 수 없고, 밭을 갈아엎어야지"
청주시 흥덕구 낭성면 추정1리 이장인 김준기(60)씨는 요즈음 폭탄이 떨어진 듯 엉망이 된 옥수수밭을 볼 때면 울화가 치민다.
6천270㎡(약 1천900평)의 밭을 멧돼지가 들쑤셔 놓으면서 사료용 옥수수가 뿌리째 뽑혔는가 하면 옆으로 쓰러져 수확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김씨가 옥수수밭에 가보지 못한 것은 290㎜의 폭우가 쏟아진 지난 16일 이후다.
가뭄 속에서도 용수를 정신없이 끌어대며 정성을 쏟은 논 1만7천160㎡의 80%가 토사에 매몰됐고, 소 70마리를 키우는 축사도 빗물에 잠겼다.
옥수수밭은 지대가 높아 수해가 없겠거니 생각한 김씨는 자신의 논과 축사를 정리하고 이웃 수재민을 돕느라 동분서주하다가 지난달 28일 밭에 갔다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수해 복구에 정신이 없어 2주일간 밭에 못 가봤는데 멧돼지가 열흘 넘게 내려와 들쑤셔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원구 오창읍에 사는 권모(59)씨는 밭을 임대해 옥수수와 고추, 땅콩 농사를 지어 왔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농사를 망쳤다.

폭우로 침수된 밭 일부를 힘들게 정리했는데, 멧돼지가 4천950㎡의 옥수수밭을 짓뭉개 놨다.
1천650㎡ 밭에도 고라니가 드나들면서 고춧대는 부러졌고 땅콩은 수확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파헤쳐졌다.
밭을 빌려 농사하는 처지에 야생동물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전기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권씨는 "가뭄과 장마 속에서도 애지중지 농사를 지었는데, 쟁기로 갈아놓은 것처럼 쑥대밭이 됐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달 16일 수마가 할퀴고 가면서 청주에서는 농경지 2천970㏊가 유실·매몰되거나 물에 잠겼고, 괴산에서도 72㏊의 농경지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가뭄·홍수에 이어 멧돼지·고라니 등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농민들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청주에서는 야생동물로 인한 크고 작은 농작물 피해가 물폭탄이 쏟아진 후 지난달 말까지 보름간 90건 접수됐다.
이 가운데 피해 보상을 신청한 8개 농가의 피해면적은 무려 1만1천㎡에 달한다.

서원구 남이면에서는 지난달 19일 멧돼지가 810㎡의 복숭아밭을 망가뜨렸고, 같은 구 현도면에서는 지난달 24일 멧돼지가 406㎡의 고구마밭을 파헤쳐 놓은 일이 있었다.
괴산군 감물면에서도 지난달 18일 멧돼지가 1천977㎡의 옥수수밭을 파헤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유해 야생동물 자율구제단이 멧돼지나 고라니 포획에 나서지만 피해는 끊이지 않는다. 야생동물이 초저녁부터 인가 부근에서 어슬렁거리는 일도 있다.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 보상액도 매년 느는 추세다.
충북도에 따르면 피해 건수 및 보상액은 2015년 426건 3억8천900만원에서 작년 684건 4억7천100만원으로 증가했다.
도 관계자는 "시·군별 포획단을 운영하고 전기 울타리나 철조망 설치비를 농가에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며 "생태계 보전 차원에서 무작정 포획에 나설 수도 없는 게 딜레마"라고 말했다.
k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