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꿀벌 킬러'로 알려진 아열대 외래종 등검은말벌이 무더워진 기후에 전국적으로 퍼지며 사람과 꿀벌 가리지 않고 마구 공격하고 있다.
2003년 부산에서 벌집 1개 규모로 발견된 등검은말벌은 10여 년간 관계 당국의 방치 속에 휴전선 인근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등검은말벌(학명:Vespa velutina nigrithorax)은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3년 처음 발견됐을 때 학자들은 장수말벌 등 국내 토종 말벌에 비해 크기도 작고, 추위에도 약한 등검은말벌이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도심에서 쉽게 둥지를 틀지 못하는 토종 말벌에 비해 적응력이 뛰어나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히 세를 키웠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무더운 날씨는 아열대 지역이 고향인 등검은말벌의 생육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
지난해 경북대학교 최문보 교수 연구팀 조사에 의하면 한반도 중남부 대부분 지역을 비롯해 경기 북부와 강원도에서도 등검은말벌의 분포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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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여왕벌이 초봄에 벌집을 지으면 크기가 점점 커져 여름철 무렵 완성된다"며 "우리나라의 봄 기온이 전체적으로 높아지면서 이 시기에 등검은말벌이 벌집을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인구가 집중된 도심에 둥지를 틀다 보니 벌 쏘임의 위협도 더 커졌다. 2015년에는 경남 산청에서 등검은말벌의 벌집을 제거하던 소방관이 벌에 쏘여 결국 숨지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등검은말벌은 주요 먹이원 중 70%가 꿀벌일 정도로 꿀벌에 대한 공격성이 커 양봉 농가의 피해도 크다.
꿀벌은 꿀을 생산할 뿐 아니라 꽃가루를 옮겨 식물의 번식을 돕는다. 등검은말벌의 파상 공세로 꿀벌 개체 수가 줄어들면 양봉 농가뿐만 아니라 꿀벌 의존도가 높은 과일과 채소 농가 등도 경제적 피해를 본다.
피해가 이어지자 전국 양봉 농가에서는 등검은말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산 기장군은 올해 등검은말벌 유인 포살 방제기술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전북 정읍시도 지난해 '등검은말벌 방제 평가회'를 열고 유인장치와 유인액을 사들이기도 했다.
국내 유입 당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만, 실질적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2013년 환경부가 위해 외래종으로 지정한 이후 등검은말벌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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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환경부와 국민안전처 등이 대책을 논의하며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흐지부지됐다.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되면 확산 모니터링 대상이 되고,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한 각종 활동이 지원된다.
지자체와 양봉 농가들이 특수 액체 등으로 등검은말벌을 유인하는 '트랩'을 보급해 등검은말벌을 막으려 노력하지만 이마저도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1개 농가에서 현재 사용되는 트랩에 잡히는 등검은말벌은 1주일에 200∼250마리 수준이다. 많아 보이지만 등검은말벌은 1개 벌집당 토종 말벌의 2배 수준인 2천∼3천 마리까지 번식하는 점을 고려하면 실효성이 있다고 하기 힘들다.
최문보 교수는 "벌집과 여왕벌을 근본적으로 찾아내 제거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에 둥지를 튼 등검은말벌의 습성과 생태에 대해 정밀한 연구를 해야 한다"며 "소수의 개인 연구자들만 관심을 가지던 기존 상황에서 벗어나 정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jhch79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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