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오감만족의 강진한정식

입력 2017-09-10 08:01  

[연합이매진] 오감만족의 강진한정식

궁중 수라상 부럽지 않은 산해진미(山海珍味)

(강진=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남도답사 1번지'인 전남 강진은 '맛의 1번지'이기도 하다. 산과 들, 강과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독특한 지형. 천혜의 대자연은 풍요롭고 맛깔나는 음식을 인간에게 듬뿍 선사한다. 보기만 해도 배가 절로 불러지는 강진한정식이 그중 하나. 남도음식의 본고장에서 임금님처럼 진수성찬의 수라상(水刺床)을 앞에 놓고 그 맛과 멋 그리고 흥을 맘껏 누릴 수 있다.






음식에 앞서 강진군이 포근히 안고 있는 강진만부터 살펴보자. 굽이굽이 흘러내린 탐진강은 장흥군을 거쳐 강진읍의 목리(牧里) 앞을 스쳐 지난다. 목리는 강진읍내와 강진만 사이의 드넓은 평지. 얼른 봐도 기름진 풍요의 땅임이 절로 느껴진다.

그 너머로 펼쳐지는 은빛 세상. 햇빛 내리쬐는 이곳 강진만 역시 온갖 수산물이 서식하는 풍요의 바다다. 한가운데 앙증맞게 놓여 있는 작은 섬 가우도. 근래 들어 이 섬을 사이에 두고 서쪽의 도암면 신기리와 동쪽의 대구면 저두리 사이에 기다란 출렁다리가 생기면서 강진만의 이미지는 '으뜸'과 '최고'를 상징하는 'A' 자형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이와 관련해 '동에 순천, 서에 강진'이라는 말도 예부터 전해온다. 두 지역은 비옥한 땅과 넉넉한 바다를 끼고 있다는 점에서 쏙 닮았다. 전라도에서 부유한 고을로 그만큼 유명했던 것. 순천처럼 강진에도 부자들이 유독 많았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두 지역은 바다와 인접한 해상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 땅과 바다가 함께 연출하는 산해진미 상차림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기자가 강진을 찾을 때는 여름 휴가철의 주말에다 4일과 9일의 강진오일장까지 겹쳐서인지 읍내 한정식 식당들은 경향 각지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더욱 북적거렸다. 수많은 음식을 조리하고 푸짐한 밥상을 쉴 새 없이 손님방으로 나르느라 요리사들과 종업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간장게장, 전복찜, 광어회, 왕새우구이, 소고기육회, 한우떡갈비, 부꾸미, 보리굴비, 우럭구이, 간재미초무침, 표고버섯탕수육, 낙지호롱구이, 꼬막찜, 삼합….

널따란 교자상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벅찰 만큼 많은 음식으로 꽉 들어찼다. 말 그대로 상다리가 휘어질 지경. 푸짐한 상차림을 마주하고 앉노라면 구중심처의 임금님이 조금도 부럽지 않다. 너나없이 모두가 임금이 된 듯한 황홀함과 만족감! 현란한 상차림을 바라보는 두 눈은 저절로 휘둥그레지기 마련이다.

시댁과 친정 식구 7명과 함께 광주에서 왔다는 장선형(35) 씨. 장 씨는 "풍성하면서도 깔끔한 진수성찬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든다"며 "전통 기와집의 한옥방에서 밥상을 마주하니 맛과 멋이 동시에 느껴져 더욱 좋다"고 흐뭇한 얼굴이다.

자신의 회갑기념 가족모임에 참석한 김금옥(60·목포) 씨도 "강진에서 한정식을 먹어보는 게 이번이 세 번째인데 푸짐하고 맛있어 그때마다 대만족이었다"면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네 살짜리 손주에게 숟가락에 고기를 얹어 정성스레 먹여준다.

이처럼 만족도 높은 상차림을 내놓을 수 있는 배경에는 청정해역에서 사계절 생산되는 어패류와 청정 강진평야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이 있다. 이들 해산물과 농산물을 바탕으로 궁궐 임금님의 수라상도 부럽지 않은 한정식 밥상을 넉넉하면서도 멋스럽게 차려낼 수 있는 것이다.





◇ 수라간 궁녀가 비법 전한 궁중음식이 그 유래



그렇다면 강진한정식은 언제, 어떤 연유로 지금처럼 푸짐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태어나게 됐을까? 그 연원은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의 끝자락인 강진은 왕궁과 거리가 멀어 조선조 사대부나 왕족들의 유배지 중 하나였다. 이때 유배를 따라온 수라간 궁녀가 궁중음식의 비법을 전하면서 강진한정식이 탄생하게 됐다. 부자들이 많이 모여 살던 목리로 유배 온 이 궁녀는 이곳 아녀자들에게 수라간의 요리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는데, 이것이 훗날 풍성한 강진한정식으로 거듭 태어났다고 한다.

궁녀가 유배 올 당시 궁중에서는 신분에 따라 음식에 각기 차이를 두었다. 왕의 수라상은 12첩 반상으로 차렸던 반면, 일반인에게는 9첩 이하로 제한했다. 반찬은 구이, 전, 볶음, 편육, 조림, 지짐, 생채, 숙채, 튀김, 전골, 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됐다.

이처럼 화려한 궁중음식이 강진 지역의 향토 음식과 한상차림으로 절묘하게 융합되면서 맛 좋고 영양 많은 오감 만족의 한정식 밥상으로 재탄생했다. 강진은 강과 바다, 들과 산 등 자연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는 데다 사계절 기후조건도 매우 좋아 다양한 해산물, 곡식, 야채 등 온갖 식재료들이 예부터 풍성하게 넘쳐났다. 천혜의 자연조건과 고품격의 궁중음식이 만나 오감만족의 한정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 한 밥상에 놓인 32가지 음식의 '대향연'



4인을 기준으로 한 강진한정식의 상차림은 10만원, 12만원, 16만원짜리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밥상에는 무려 32가지의 음식이 즐비하게 놓여 입맛의 대향연을 펼친다.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보통 세 번에 걸쳐 차례로 나눠 놓이는데 그 맛과 멋에 취하다 보면 그 많던 음식이 금세 어디로 다 사라졌나 싶어 신기해질 정도다.

한정식의 대표식당 중 하나인 다강한정식의 경우 '정삼품' '정이품' '정일품'이라는 이름으로 세 가지 밥상을 내놓는다. 10만원짜리 정삼품에는 32가지 음식이 놓이고, 12만원짜리 정이품에는 전복 슬라이스, 낙지 호롱이, 낙지 탕탕이 등이 추가된다. 16만원짜리 정일품 밥상에는 우럭구이, 전복찜 등 한결 고급스러운 요리들이 더 놓인다.

상은 크게 세 차례로 나눠 차려진다. 1차로 반찬 등 기본음식이 놓이고, 이어지는 코스요리로는 떡갈비처럼 따뜻하거나 뜨거운 음식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마지막 식사 때는 밥상의 귀족격인 간장게장과 보리굴비가 밥과 함께 등장한다.

가장 자신 있게 내놓는 밑반찬이 간장게장이라는 이 식당의 문막래 대표는 "살이 꽉 찬 싱싱한 꽃게에 배, 사과, 다시마, 감초 등 10여 가지의 재료를 넣고 푹 고아낸 육수와 간장에 꽃게를 재워둔 뒤 4~5일간의 숙성 과정을 거쳐 밥상에 내놓는다"며 "짜지도 달지도 않으면서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 간장게장이 손님들로부터 더욱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고 말한다.

문 대표는 "전통의 한정식 맛을 지키되 시대 흐름과 문화 변화에 맞춰 새로운 기법의 음식이 나날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마늘 소스를 가미한 새우구이의 경우 젊은층의 취향에 잘 맞는 대표 요리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풍성한 상차림 때문인지 강진한정식 식당에서는 가족 단위의 모임을 갖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넓은 홀에서 일가족 30명과 함께 음식 맛에 푹 빠진 이유순(80·신안) 할머니는 "자식과 일가들이 오늘 내 팔순잔치를 벌여주고 있는데 분위기도 좋고 음식 맛도 좋아 고생 속에서도 세상을 살아온 보람을 느낀다"고 흐뭇해했다. 장남 장홍배(59) 씨는 "가족의 노래와 하모니카 연주를 들으시며 맛있게 음식을 잡수시는 어머님 모습에 눈시울이 절로 붉어진다"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재 강진에는 다강을 비롯해 예향, 남문식당, 강진만한정식, 돌담한정식, 둥지식당, 명동식당, 석천, 청자골종가집, 해태식당 등 다수의 한정식 식당이 성업 중이다.







◇ 영랑생가 등 가볼 곳도 많아



강진에는 한정식 외에도 강진회춘탕, 병영돼지불고기, 강진물회, 목리장어, 짱뚱어탕, 바지락회무침, 옴천토하젓 등 영양 많고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많다.

이중 회춘탕(回春湯)은 소금을 조금도 넣지 않고 12가지 한약재를 한 시간 이상 푹 고아서 담백하게 우려낸 국물에 문어와 전복, 닭을 넣고 끓인 음식이다. 영양은 물론 식감도 매우 좋아 최근 인기가 높단다. '먹으면 다시 젊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음식은 싱싱한 해산물이 풍부한 이 지역이 낳은 또 하나의 대표적 향토음식 중 하나다.

강진에 간 김에 이 고장 음식을 맘껏 즐긴 뒤 주변 관광지까지 둘러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강진읍내에 있는 김영랑 시인의 생가에 가면 초가집 한옥과 함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샘 등 시인의 삶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다. 영랑생가 뒤편에는 지난 5월 개장한 세계모란공원이 있어 사시사철 모란꽃을 구경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하며 '목민심서' 등 50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다산초당, 기다란 출렁다리는 물론 대형 청자타워 짚 트랙을 즐길 수 있는 가우도, 고려청자의 전통이 집약된 고려청자박물관, 올해로 축성 600주년을 맞은 전라병영성도 찾아보면 만족감을 극대화할 수 있어 더욱 좋겠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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