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조선왕조실록' 히트…마지막 일제강점기편 펴내
"국정교과서 반대…역사교과서는 큰 방향만 제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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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96년 3월 출간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그해 연말까지 30만 권이 팔리면서 서점가를 휩쓸었다.
당시는 대중역사서, 특히 우리 역사를 다룬 책이 별로 없었던데다 인기 역사서의 연간 판매 부수가 1만 권 남짓하던 시절이었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저자인 박영규 씨가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출판인이라는 점도 화제였다.
지금까지 200만 권이 팔려 나간 '조선왕조실록' 인기에 힘입어 '고려왕조실록' '고구려왕조실록' '백제왕조실록' '신라왕조실록'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이 잇달아 나왔다.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는 이번에 출간된 '일제강점실록'으로 21년의 대장정을 끝낸다.
8일 전화로 만난 박영규 작가는 "저 깐에는 할 일을 어느 정도 마쳤다는 점에서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별로 없었는데 '한 권으로 읽는 실록'을 일제강점기 편까지 펴내면서 마무리한 셈이죠. 역사의 대중화에 제 책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전문적인 지식으로 접근하기 이전에 하나의 교양이 될 수 있도록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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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해동불교신문과 산하 해오름출판사 편집장을 겸했던 작가는 평소 역사 공부에 흥미를 느꼈다.
조선 9대 왕 성종(1457~1494)의 가계도를 하나하나 찾던 중 "조선 왕조사도 제대로 정리된 책이 하나 없는" 현실에 갑갑함을 느꼈다.
"'조선은 당쟁하다 망한 나라'라는 것이 대다수의 인식이었어요. 조선이라는 나라를 다룬 내용도 야사이거나 TV 드라마에서 본 궁중 암투, 왕의 여성 편력 이런 것들이었고요. 그래서 실록이라는 것을 통사 형태로 정리해보자고 마음먹었죠."
그는 "무모한 도전"을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집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지 않았던 터라, 당시 여강출판사에서 펴낸 북한판 '이조실록' 400권을 큰 맘 먹고 사들였다. 1973년 완역된 '이조실록'은 쉬운 우리말로 돼 있어 작업에 큰 도움을 줬다고.
2년 3개월간의 작업을 마무리한 박 작가는 들녘 출판사에 "5만 권은 팔린다"며 호언장담했지만 마음을 온전히 놓지 못했다.
"나름대로 '뻥'을 좀 친 것이죠. (웃음) 그런데 첫 쇄에서 찍은 3천 권이 이틀 만에 동났어요. 그래서 추가로 3천 권을 찍었는데 하루 만에 다 나갔고요. 다음 쇄에서 5만 권을 찍었어요. 약 10쇄 치를 동시에 찍은 거죠."
그해 11월 KBS 1TV에서 사극 '용의 눈물'을 방영하기 시작한 것도 호재였다.
조선 개국사를 그린 이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이듬해 1997년 100만 부를 훌쩍 넘겼다. 어릴 적 서가에 이 책이 꽂혀 있었던 모습을 기억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작가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첫 책이 그렇게 성공하다니 제 개인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까지 합하면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가 300만 권 가까이 팔린 것으로 추산했다.
북한에서도 이 시리즈를 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사 관련 출판물이 소개되는 일이 좀처럼 적은 일본에서도 '조선왕조실록'과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이 번역됐다.
이번에 출간한 '일제강점실록' 편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미루고 미뤘던 작업이다.
"일제강점기를 독립투쟁사에 한정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는 새로운 문물이 한국에 들어온 격변의 시대이기도 했어요. 우리가 수탈당하고 핍박받고 엄청난 피해를 본 부분도 그대로 자세히 전달해야겠지만, 우리가 핍박 속에서도 스스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었어요."
일제강점의 시작을 개화기로 보고 개화기 35년과 식민통치기 35년으로 구성한 것도 '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의 특징이다.
대안학교 교장으로도 일했던 박 작가는 올해부터 학교를 떠나 글쓰기에 매진 중이다.
그는 6월 출간한 '조선반역실록'처럼 특정 주제를 다루는 책을 20권 정도 펴낼 계획임을 신나는 목소리로 전했다.
평생 대중을 위한 역사 글쓰기에 매진한 저자에게 마지막으로 역사교과서 문제를 물었다.
그는 "국정교과서 형태는 말이 안 되고 검정 형태라도 한 교과서만 선택하는 건 역사 교육에 적당하지 않다"면서 "교과서는 큰 주제와 방향만 제시하고 다양한 필독서를 두는 시스템으로 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역사는 교과서 한 권에 욱여넣어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한 권으로 다루려 하죠. 또 여러 명의 저자가 참여하다 보니 필체도 일관성이 없고 시각도 일관되지 않죠. 그러다 보니 재미가 없어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각각 20권 정도의 필독서를 선생님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해서 이를 바탕으로 자유롭고 다양한 역사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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