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혁만으로는 남녀평등 안돼…여성이 자아 찾아야"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사회 변혁만으로는 남녀평등을 이룰 수 없다. 여성이 자아를 찾아야 한다. 안팎의 변혁이 함께 일어날 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근대 한국불교의 대표적 비구니이자 문인, 사상가였던 일엽 스님(본명 김원주·1896∼1971)이 남긴 말이다.
일엽스님은 최고의 인텔리 여성이었다. 기독교 목사의 딸로 태어나 이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까지 했다. 귀국해서는 부녀 잡지 '신여자'를 창간했고 나혜석, 윤심덕과 교류하며 자유연애론과 신정조론으로 대표되는 여성해방운동을 이끌었다.
1933년 모든 것을 버리고 만공 스님 문하로 출가한 뒤에는 불교철학에서 독특한 입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조명되지 못했다. 여러 번의 결혼과 동거만 부각돼 가벼운 얘깃거리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인 오다 세이조와의 운명적 만남, 백성욱 전 내무부 장관과 나눈 길고 긴 사랑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일엽 스님이 입적한 지 근 반세기 만에 그의 삶을 학술적으로 파고든 평전이 처음으로 출간됐다.
아메리칸대학 철학과 박진영 교수가 쓴 영문판 '여성과 불교철학: 김일엽 선사를 통하여'(Women and Buddhist Philosophy: Engaging Zen Master Kim Iryop)이다.
박 교수는 8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학계에는 한국불교 관련 자료가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며 "일엽스님을 통해 한국 비구니의 사상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서 영어로 평전을 썼다"고 말했다.
일엽 스님의 족적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박 교수는 대부분의 연구가 1933년 출가를 기점으로 단절된다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에는 개화기 신여성으로만, 출가한 이후에는 은둔한 수행자로만 묘사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엽 스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를 추구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지워진 억압에 저항해 사회변혁 운동을 했고, 출가한 뒤에는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 자유를 얻으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기존 연구를 반박했다.
이어 "스님은 우리가 가장 자유로울 때 창조성이 발휘된다고 했다. 창조성이 구현된 결과가 '문화'이고, 문화인은 업과 윤회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람이다. 따라서 부처님을 '대문화인'이라고 정의했다"고 설명했다.
세간에서 일엽 스님의 출가를 두고 사랑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돈 것을 두고도 고개를 내저었다.
박 교수는 "그렇게 치면 세상 사람 다 출가해야 한다. 연애에 실패 안 해본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나혜석, 김영순 등 신여성의 삶은 곧잘 단편적인 이성관계로만 설명되는데, 그런 식의 평가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엽 스님은 1971년 열반에 들 때까지 비구니 사회의 존경받는 지도자였으며 한국 여성에게 커다란 위로가 된 존재였다"고 강조했다.
일엽 스님의 4대 손상좌 경완 스님(김일엽문화재단 부이사장)은 일엽 스님의 유훈을 소개했다.
스님은 곧잘 "내 법문을 서양에 알렸으면 좋겠다. 내가 한마디 물어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못 내놓는 대답을 서양인은 하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대를 앞서나간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던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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