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연 교수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갑진왜란과 국민전쟁'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종의 1896년 러시아공사관행을 일제의 압력에 따른 피란이 아닌 정치적 재기를 위한 망명으로 규정했던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대한제국 이후의 역사를 서술한 두툼한 책 2권을 잇달아 출간했다.
지난 1월에 나온 '갑오왜란과 아관망명'의 후속편인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과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이상 청계 펴냄)은 정치철학자인 저자가 1897년 고종이 대내외에 선포한 대한제국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저자의 연구 목적은 명확하다. 올해로 120주년을 맞은 대한제국이 정치적으로는 수구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는 가난했다는 견해가 거짓임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고종이 허약하고 무능한 군주였다는 비판도 후대에 만들어진 누명임을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대한제국을 오히려 선진적 근대국가이자 신분제를 타파한 '백성의 나라'로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 신식군인 3만 명을 보유한 군사강국이었고, 아시아 제2의 경제대국이었다고 주장한다.
대한제국이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생경하게 느껴진다. 왕이 황제가 되겠다고 선언한 국가가 어떻게 근대적이냐는 반감이 들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민주공화국을 정치적 근대성의 기준으로 삼지 말라"고 강조한다. 왕의 유무가 근대성을 판단하는 잣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근대성을 논할 때 종교에서 분리해 세속화된 정치, 신분적으로 차별이 없는 국민, 국민개병제에 바탕을 둔 군대의 정예화, 시장화와 산업화 등을 두루 살피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대한제국은 개혁철학을 갖춘 고종 황제가 보수적 양반층의 봉건적 이익을 희생시켜서라도 강화된 왕권으로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 선도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한 황제전제정이었다"고 규정한다.
대한제국이 군사강국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1901년 서울 중앙군 병력과 지방 군대인 진위대를 합치면 군인이 2만8천여 명에 달했고, 전국의 포군과 무관학교 생도를 더하면 3만 명은 충분히 넘었을 것이라는 추정치를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당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에 3만 명의 신식군대를 가진 나라와 한국군의 전투력을 능가하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렇게 대한제국이 발전된 나라였다는 저자의 논리를 좇다 보면 문득 '왜 이 나라가 망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해 '갑진왜란'이라고 답한다. 갑진왜란은 1904년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인 러일전쟁을 말한다. 대한제국 멸망의 요인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바는 대한제국의 복권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틀은 대한제국 시기에 놓였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 본인도 이를 "역사관의 혁명적 변환"이라고 평가한다.
그의 대한제국 중심주의 사관은 파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국수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감도 들게 한다. 온전한 판단은 벽돌 같은 책을 완독(完讀)한 사람만 내릴 수 있을 듯싶다.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 1천136쪽. 6만5천원.
갑진왜란과 국민전쟁 = 688쪽. 4만8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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