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농장을 찾아간 젊은이들의 이야기 담은 책 '파밍보이즈'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지난달 개봉한 영화 '파밍보이즈'는 '꽃청년' 세 명의 농업 세계 일주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20대 또래 청년들이 유학과 어학연수, 교환학생 등으로 외국을 찾을 때 주인공 기황과 하석, 두현은 농사를 짓는 법을 배우겠다며 세계의 농장들을 찾아갔다. 이들은 농장에서 농사를 직접 짓고 생태공동체를 만나며 다양한 농촌의 모습들을 발견했다.
영화는 이들이 방문한 유럽 농장들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시작됐다.
영화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유지황(31)씨가 펴낸 신간 '파밍보이즈'(남해의봄날 펴냄)는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이야기까지 담은 책이다.
유씨는 23살 때 여행했던 이집트에서 차 밑에 들어가 자는 아이들을 보며 기아와 가난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공학도였던 그는 농기계를 만들어 식량 문제 해결에 일조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생각이 달라진 것은 농자재 도매상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였다. 주변 농촌을 두루 돌아봤던 그는 농촌에 아무리 둘러봐도 젊은이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농촌에 청년들의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동네 아저씨에게 30평 정도의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중간에 나가라는 말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쫓겨 나왔다.
"농사짓다 쫓겨나니 다른 청년 농부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청년 농부를 만날 수가 없었어요. 귀농·귀촌이란 단어가 아직 본격적으로 쓰이기 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일본에 가보자고 생각했죠. 가보니 일본은 20년 전부터 준비를 해왔더라고요. 그럼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생각해 세계여행을 떠나게 된 거죠."
여행에는 함께 자취하던 대학 후배 김하석(30)과 딸기농장집 아들로 농부를 꿈꾸던 권두현(30)이 합류했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은 12개국 35개 농장으로 이어졌다. 2013년 6월부터 2015년 8월까지 600일의 여정이었다. 농장에서 직접 일하기도 하면서 세계 농부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그들의 농업 철학을 배웠다.
여행이 끝난 지 1년 10개월이 지난 지금 세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김씨는 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매장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농부들이 키운 소중한 농산물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어 했던 꿈을 이룬 셈이다.
권씨는 고향 산청에서 딸기를 키우는 청년 농부가 됐다. 딸기 하우스 다섯 동을 직접 관리하며 여행에서 배운 농부들의 철학을 자신의 농사에서 실천하고 있다.
유씨는 집을 짓고 있다. 농사를 짓고 싶었지만 농사지을 땅과 살 곳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으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녔죠. 농장이 있는 기성세대도 만나고 사회적 경제 수업도 들었는데 농사를 지을 방법이 없더라고요. 학자금 대출도 있는데 땅도 없고 살 곳도 없고…. 지원사업이요? 지원사업은 당장 결과를 내기를 요구하죠. 농업은 적어도 3∼5년은 걸려야 결과가 나오는데…. 그 와중에 의외로 저처럼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들을 위해서 농사짓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청년 농부를 위한 이동가능 목조주택은 벌써 경남 진주에 1, 2호집을 지었다. 흙을 달고 집에 들어오는 농부를 배려해 샤워장과 세탁실이 현관 옆에 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요리에도 관심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부엌에도 신경을 썼고 1인 주거를 위한 수납공간도 넉넉히 갖췄다. 1호집은 자신이 살고 있고 2호집은 판매했다.
3호집은 실제 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가 입주할 예정이다.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으며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한국식으로 구현하는 실험을 할 계획이다.
그는 자신처럼 농부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농사는 권해주고 싶지만 지금 이 환경에서는 시작하기가 어렵다"며 안타까워했다.
"농사라는 게 매력이 있긴 해요. 힘들다고는 하지만 힘들지 않게 할 수도 있고 컨셉트에 따라 다양한 농장의 형태가 있거든요. 하고 싶은 실험도 많은데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네요. 힘들 것을 각오하는 것보다도 시작할 수 없는 것이 더 힘들어요."
그러나 유씨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여행 가기 전에는 문제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잖아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다양한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304쪽. 1만6천원.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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