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들 불편·늦은 귀가 감수, 환자 무사히 치료…기사 "도와준 승객에 감사"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지난 9일 밤 경남 창원 시내버스 110번의 종점은 병원 응급실이었다.
창원시내 34.5㎞를 가로질러 약 80개 정류소를 거치는 이 버스는 5분 남짓한 사이에 벌어진 일 때문에 노선을 이탈해 병원 응급실로 질주했다.
이날 오후 10시 35분께 110번 버스 운전기사 임채규(43) 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승객 20여 명을 태우고 노선을 돌고 있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보문주유소를 지나 창원교도소 지점을 향해 버스를 몰던 임 씨는 갑자기 '쿵'하며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백미러를 쳐다봤다.
거울 속으로 한 20대 남자 승객이 발작을 일으켜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린 채 의자 뒤로 고개를 젖혀 의식을 잃은 모습이 비쳤다.
깜짝 놀란 임 씨는 버스를 창원교도소 정거장 인근에 세운 뒤 쓰러진 승객을 향해 달려갔다.
다른 승객 몇 명도 달려와 쓰러진 20대 남성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 남성은 의식을 잃은 듯 보였으나 다행히 호흡에는 이상이 없었다.
임 씨는 즉시 119에 신고한 뒤 나머지 승객들을 진정시키며 응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요량이었다.
그러나 몇몇 승객이 '응급차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 차라리 우리가 이 남성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자'는 의견을 냈다.
순간 임 씨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환자 상태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병원으로 직접 버스를 몰다 도착이 늦어 응급치료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더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앰뷸런스가 환자를 태우고 가면서 응급치료를 하는 게 가장 확실한 선택처럼 생각됐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사가 급박할지도 모르는 환자를 눈앞에 둔 채 한가하게 앰뷸런스만 기다릴 수도 없었다.
창원 시내 지리를 꿰뚫고 있던 임 씨가 계산해보니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5∼10분이면 충분했다.
빠르면 앰뷸런스가 환자를 이송해 병원에 도착하는 것보다 두 배 넘게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를 몰기로 한 임 씨는 승객들에게 '불편하더라도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여기에 토를 달거나 반대하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승객 동의를 얻은 임 씨는 페달을 밟아 인근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승객 2∼3명이 바닥에 쓰러진 환자를 붙잡고 심폐소생술을 했다.
약 10분 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임 씨는 의료진을 부른 뒤 환자에게 다가갔다.
승객들의 응급처치 때문인지 다행히 환자는 의식이 어느 정도 돌아온 상태였다.
119 응급차가 호출 현장인 창원교도소에 도착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임 씨의 계산대로 실제 두 배 가까운 시간을 단축한 셈이었다.
환자를 무사히 병원으로 이송한 임 씨는 다시 노선으로 복귀하며 정거장을 놓친 승객들에게 모두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환승해서 가면 되니 신경 쓰지 말라'며 절반에 가까운 승객들이 병원에서 떠났다.
가는 방향이 맞는 일부 승객만 태운 임 씨는 종점인 인계초등학교에 도착한 뒤 퇴근했다.
이날 임 씨가 이송한 20대 환자는 무사히 치료를 받고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씨는 경황이 없어 불편함을 감수한 승객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임 씨는 "승객들이 내 일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며 불편함을 감수해 좋은 결과가 있었지 내가 한 것은 운전밖에 없다"며 "당시 버스에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이 있었는데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던 게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한 일은 버스 기사로서 당연한 책임이자 의무이지 선행이라 할 수 없다"며 "그런 상황을 대비한 매뉴얼도 없고 경험도 없어 당황한 나를 도와주고 협력해준 승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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