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힌츠페터에게 광주는 '과거'가 아니라 인생의 일부였죠"

입력 2017-08-10 16:23   수정 2017-08-10 16:40

"남편 힌츠페터에게 광주는 '과거'가 아니라 인생의 일부였죠"

영화 '택시운전사' 속 실제 주인공 부인 브람슈테트 여사 내한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를 보고 너무 감정이 벅차서 잠을 못 이룰 정도였습니다. 남편이 이 영화를 함께 못 봐서 너무 아쉬울 따름입니다."

영화 '택시운전사' 속 실제 모델인 독일 언론인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80) 여사는 남편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10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난 그는 전날 영어자막으로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은 듯했다.

"영화에서 시민들이 잔인하게 죽는 장면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다큐멘터리보다 더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과 한국 배우들의 감정 표현도 무척 훌륭했죠."

남편 역을 맡은 크레취만에 대해서는 "남편과 외모도 닮았고, 정적이면서도 의지가 강한 듯한 동작이나 표정도 비슷했다"며 만족스러움을 나타냈다.

지난해 힌츠페터가 숨지기 직전까지 그의 곁을 지킨 브람슈테트 여사는 남편의 각별한 한국 사랑에 자신도 '감염됐다'고 했다.

"남편에게 한국, 특히 광주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역사였습니다. 남편의 전 인생에 걸쳐 광주는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사건이었죠."

브람슈테트 여사와 힌츠페터는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 사이였다가 독일 킬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재회했다. 브람슈테트 여사는 이후 마취과 전문의가 됐지만, 힌츠페터는 2학기 정도 의학을 전공하다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계기로 카메라 기자로 진로를 바꿨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2002년. 브람슈테트 여사가 병원 근무 마지막 날 응급실 당번을 하고 있을 때 힌츠페터가 응급실로 실려 오면서다. 의사와 환자 사이로 우연히 재회한 두 사람은 6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NDR 카메라 기자가 된 힌츠페터는 1980년 일본 특파원 시절 광주로 들어와 목숨을 걸고 광주의 참사 현장을 기록, 전 세계에 알렸다.

그해 9월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죄로 사형판결을 받자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동료와 함께 5·18에 대한 45분짜리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대한민국'을 만들어 한국 군사 정권의 폭정을 고발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 선고를 받자 남편은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도쿄 특파원 때 광주를 촬영했던 원본을 3일 밤낮으로 편집해 독일 본사에 보냈죠. 그러나 방송국에서 쉽게 편성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방송이 안 나가면 그만두겠다고 반발해 다큐멘터리가 방송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전에 힌츠페터는 자신의 삶을 다룬 영화 제작을 사양하다가 고심 끝에 허락했다고 한다. "남편은 한 나라의 역사가 망각의 세계로 잊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죠.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후대가) 역사를 배울 때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있어 시청각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했죠."

브람슈테트 여사는 남편이 찍은 광주 영상을 직접 보면서 남편이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 영상들을 보면 정말 끔찍하죠. 눈앞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체육관에 즐비한 관 위에는 태극기가 덮여있었죠. 그런 참상 속에서 도망가지 않고 촬영을 하려면 얼마나 용기가 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왜 도망가지 않고 촬영했냐'고 물어보면 남편의 대답은 항상 똑같았습니다. '나는 해야만 했어' 라고."

남편은 광주로 맺은 한국과 인연을 평생 이어갔다. 1986년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거리 시위를 취재하다 사복경찰들에게 심하게 맞아 크게 부상했다. 당시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어 7시간 동안 목 디스크 수술을 받기도 했다.

1995년 기자직에서 은퇴한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현장을 지켰던 치열한 기자정신이 국민의 양심을 깨워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공로로 2003년 11월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받았다. 지난해 1월 별세한 힌츠페터의 머리카락과 손톱 일부는 '광주에 묻히고 싶다'던 유지에 따라 망월동 5·18 구묘역에 안치됐다.

2003년부터 여덟 번째로 한국을 찾은 브람슈테트 여사는 빡빡한 일정 때문에 이번에는 남편의 유해 일부가 안치된 광주를 찾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택시운전사'가 개봉 9일째 6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고, 영화의 흥행과 함께 힌츠페터에 대한 추모 열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전하자, 브람슈테트 여사는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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