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유족, 미쓰비시 상대 손배소 승리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요양원 생활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습니다"
소작농의 7남매 중 넷째딸로 태어나 일제에 의해 강제노역을 끌려갔던 김재림(87) 할머니는 11일 마른 눈물을 찍어내며 앙상한 어깨를 들썩였다.
김 할머니는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3년 6개월을 끌어온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날 값진 승리를 얻었다.
법원은 1944년 12월 7일 도난카이 지진으로 크게 다쳤던 김 할머니에게는 1억2천만원을, 다른 2명의 생존자에게는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미쓰비시에 명령했다.
또 유가족 원고에게는 고인이 된 피해자 배상금의 상속분을 모두 인정해 1억5천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회한과 홀가분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법원을 나선 김 할머니는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도움 주고 고생한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말을 건넸다.
김 할머니와 함께 소송에 나선 오철석(81)씨는 "오늘 승리는 억울한 피해자를 위해 노력해준 일본과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덕분"이라며 "가깝고도 먼 한일관계가 정의를 바탕으로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오씨의 누이 길애씨는 근로정신대로 강제 징용됐다가 14살 어린 나이로 도난카이 지진에 희생됐다.
시민모임은 이날의 판결이 '199엔'의 치욕을 되갚고, 식민 범죄와 인권유린에 철퇴를 가한 사법주권의 승리라고 반겼다.
단체는 김 할머니, 오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미쓰비시는 2015년 후생연금 탈퇴수당 199엔을 지급하며 이번 소송의 원고들을 우롱했다"며 "보기 좋은 승소로 이를 되갚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쓰비시는 '주차장 협소' 안내 문구의 번역문장이 빠졌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 3년간 소장을 세 차례나 반송하는 반인륜적 태도를 보였다"며 "항소를 포기하고 즉각 법원 명령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시민모임은 우리나라 사법부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이들은 "대법원은 계류된 사건을 언제까지 손에 쥐고 있을 것이냐"면서 "피해자의 소맷자락을 붙들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쓰비시 등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국내에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사건은 모두 14건이다.
이중 시민모임의 도움을 받아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소송은 3건으로 1·2·3차로 나뉘어 이뤄지고 있다.
이날 광주지법의 판결은 2차 손해배상 소송의 1심이다.
법원은 앞서 지난 8일 열린 3차 손해배상 소송의 1심에서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5명이 제기한 1차 소송은 1·2심에서 모두 승소했으며, 미쓰비시의 상고로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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