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유관기관 대책반 꾸려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정책효과 검증키로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따른 자본확충이라는 숙제를 떠안은 데다가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를 내리라는 압박까지 받게 된 보험업계는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보험업계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면 중장기적으로 실손보험료를 인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보험료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손보험은 해마다 적자를 내고 있어 오히려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생명·손해보험업계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하는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실손보험 인하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부분이 늘어나면 보험회사가 지출해야 할 보험금이 줄어들어 그만큼 보험료가 내려갈 여력이 생긴다.
문제는 그 시기와 폭이다. 보험업계는 정책의 효과가 가시화돼 실손보험의 적자가 줄어야 인하를 검토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실손보험은 2009년 10월 보상한도와 자기부담금이 표준화된 이후 보험료 상승요인을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해 꾸준히 손실이 누적됐다.
한동안 동결된 실손보험료는 2015년 금융당국의 보험 자율화 조치에 힘입어 그해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인상됐다. 평균 인상률이 20% 내외로 커 보험 가입자들이 느끼는 보험료 부담은 상당했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화재[000810](109.9%)와 일부 생명보험사를 제외한 대부분 보험사는 손해율이 130% 내외로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했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고객에서 받은 보험료 대비 고객에게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로, 손해율이 100%를 넘어간 것은 받은 보험료보다 내준 보험금이 더 많다는 뜻이다.
정부는 보험료 인하에 좀 더 적극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6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민간보험사가 얻은 '반사이익'을 실손보험료 인하로 국민에게 되돌려주겠다며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 정책을 연계하는 법을 올해 안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정기획자문위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를 토대로 2013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이후 민간 보험회사에 1조5천억원의 이익이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국정기획자문위의 이런 입장은 정부의 이번 대책에 반영됐다. 보건복지부는 금융위원회와 협조해 공·사보험 연계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공·사보험 협의체를 구성, 손해율과 반사이익의실태를 조사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보험업계는 이에 대해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원, 생명·손해보험협회와 회원사 등 전 보험업계 당사자와 유관기관이 대책반을 꾸려 이번 대책의 정책효과를 검증하기로 했다.
당초 국정기획위원회의 주장처럼 보험업계가 과거에 실제로 반사이익을 봤는지를 확인하려고 했으나 정부 대책이 나온 만큼 앞으로 있을 반사이익, 즉 정책효과를 검증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보험연구원이 검증 방법을 비롯한 이론적 틀을 마련하고, 보험개발원과 업계가 관련 통계를 지원하기로 했다.
대책반은 의료비 영수증을 일일이 살펴 특정 진료항목에 구체적으로 얼마나 보험금이 지급됐는지를 확인하겠다고 할 정도로 검증 의지가 높다.
대책반의 검증 결과에 따라 실손보험료 인하를 두고 정부와 업계가 이견을 보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보험업계는 IFRS17에 따른 자본확충이라는 큰 숙제도 있다.
2021년 도입되는 IFRS17에서는 보험부채를 원가가 아닌 결산 시점의 시가로 평가하기에 보험회사가 적립해야 할 책임준비금이 늘어난다.
또 IFRS17에서 지급여력(RBC) 비율을 적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자본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보험사가 유상증자나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권 발행 등으로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으나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보험사들은 금융당국의 기준에 맞춰 RBC 제도 개선안의 필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일부 보험사는 결과가 상당히 안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최근 IFRS17을 준비하다가 RBC가 100% 미만으로 떨어지면 재무건전성 확보 협약을 체결하고 부채 추가적립을 1년간 면제해주기로 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IFRS17이 도입되기 전에 문을 닫는 보험회사가 한두 군데 나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부 중소형사는 자본확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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