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이니 한국 살고파"…영주귀국 꿈꾸는 고려인 2세

입력 2017-08-14 08:30  

"한국사람이니 한국 살고파"…영주귀국 꿈꾸는 고려인 2세

사할린관현악단 통역사로 방한한 이옥분씨…"정착해 노모 모시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왜 한국에서 살고 싶으냐고요? 한국사람이니까요. 같은 민족과 살고 싶은 거죠. 러시아인이 대다수인 사할린에서 지내다 보면 그렇게 외로울 수 없습니다."

러시아 사할린에서 나고 자란 고려인 2세 이옥분(61·여)씨는 2000년 부모와 생이별했다. 향수병에 괴로워하던 아버지가 어머니가 함께 영주귀국을 택하면서다. 부모만 귀국길에 올라 이씨를 포함한 세 자녀는 사할린에 남았다.

당시 한국 정부는 고려인의 영주귀국 조건을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와 그의 배우자 및 장애인 자녀로 한정했다.

성인이 되기는 했어도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이씨와 그의 오빠, 남동생은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됐다.

이씨는 14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영주 귀국하던 날 어머니는 '어떻게 자식들을 놔두고 가느냐'고 울부짖었다. 나도 부모를 영영 못 본다는 생각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그는 최근 농어촌희망재단이 운영하는 농어촌희망청소년오케스트라(KYDO)가 초청한 사할린주립청소년오케스트라의 통역사로 한국을 찾았다.

이씨는 이따금 어색한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한국어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강제노역하러 사할린에 끌려온 아버지가 꾸준히 한국어를 가르친 덕분이라고 했다.

1970년대 중반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 어쩔 수 없이 러시아 국적을 취득할 때까지 아예 무국적자로 살았을 만큼 조국을 사무치게 그리워한 이씨의 부친은 영주귀국 이듬해 암 선고를 받았고, 2년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올해 85세인 어머니는 경기 안산의 고려인 마을에 정착했다.

어머니가 한국에 살고 있지만 이씨에게 한국은 여전히 '먼 나라'이다. 이산가족 신세를 언제 면할지 기약이 없어서다.

그는 "생계를 유지해야 하다 보니 사업에 필요한 물건을 챙기러 오는 때 등을 제외하면 한국에 올 일이 드물어 1년에 어머니를 볼 수 있는 날이 적다"며 "허망하게 떠난 아버지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를 곁에서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사할린 한인 2세 중에 이산가족이 많아 영주귀국을 바라는 사람도 꽤 있다"며 "현지에서 희망자 실태조사 움직임이 활발한데 한국 정부가 여기에 호응을 해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씨는 사할린 고려인 3세나 4세 등이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꾸준한 지원도 요청했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한국어를 쓰는 일이 적어 '뿌리'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절대 안 된다"며 "사할린에서 한국어 방송 분량도 늘리고, 한국어 신문 발행 횟수도 늘어나면 좋겠다. 그러면 고려인 후세들이 한국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run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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