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의 시선으로 5·18 그려 폭넓은 공감"
일주일 앞서 개봉한 '군함도'와 달리 독과점 논란 피해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14일 관객 800만을 넘어서면서 올해 첫 천만 영화 탄생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일 개봉 이래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지켜온 '택시운전사'는 이날 오전 11시 현재 실시간 예매율이 30.7%로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영화가 당사자가 아닌 외부인의 시선으로 5·18을 그려 관객의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가장 큰 흥행비결로 꼽는다. 5·18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다룬 이전 영화들과 달리 소시민인 서울 택시운전사의 시선을 따라간 것이 관객의 눈높이와 맞아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주인공인 소시민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몰입의 강도가 달랐다. 감정이입과 더불어 광주에 있다는 착각까지 들었다"(네이버 아이디 kirr***), "영화를 보고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kims****) 등의 후기를 남기고 있다.
정지욱 평론가는 "피해자의 시각에서 광주의 아픔을 담으려 했던 과거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사태를 지켜보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관찰자가 감정 이입하는 과정을 그렸다"며 "관객들 역시 대부분 당시 관찰자였기 때문에 주인공과 같은 입장에서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관객의 공감도를 높이는 데에는 송강호의 설득력 있는 연기도 큰 몫을 했다. 그는 평범한 서울의 택시기사가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뒤 내면의 변화를 겪는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면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송강호의 연기, 특히 그의 전매특허인 중얼대는 독백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며 "송강호는 이 영화로 자신이 당대 최고의 연기자 중 한 명임을 당당하게 입증해 냈다"고 평했다.
5·18을 소재로 했지만, 정치적 사건보다는 택시운전사와 독일기자 두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는 점도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윤성은 평론가는 "택시운전사와 기자가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편향성 논란 등의 비판이 일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를 다루면서도 실화를 재구성하는 데 힘쓰는 한편, 택시와 계엄군 차량의 추격전 등 극적 재미를 주는 장면들도 집어넣어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는 점도 흥행 요인이다.
영화는 이에 힘입어 평소 극장을 잘 찾지 않던 50대와 5·18을 겪지 않은 20대 미만에서도 동시에 높은 관람률을 보이면서 전 연령대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로 CGV리서치센터가 조사한 '택시운전사' 관람객 연령대별 분포(2~9일)를 보면 10대 4.1%, 20대 32.9%, 30대 20.9%, 40대 27.9%, 50대 10.0% 등으로 20대 미만과 50대의 비중이 같은 기간 CGV 전체 평균치(10대 3.9%, 20대 29.0%, 50대 9.1%)에 비해 높았다.
정지욱 평론가는 "결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영화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또박또박하고 있어서 가족 단위의 관객이 가서 즐기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경쟁작이었던 '군함도'보다 일주일 늦게 개봉한 것도 흥행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강력한 경쟁작이 없던 상태에서 개봉한 '군함도'가 역대 최다인 2천여 개의 스크린을 점유하면서 독점 논란에 휘말린 것이 흥행에 역풍으로 작용한 반면, '택시운전사'는 1천400여 개로 시작해 서서히 스크린 수를 늘리면서 독과점 논란은 피해갈 수 있었다.
개봉 전 전국을 돌며 대규모 시사회를 여는 전략을 통해 긍정적인 입소문을 일으킨 것도 주효했던 것으로 배급사 측은 보고 있다. 개봉일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네이버상에서 10점 만점 중 1점을 주는 '별점 테러'가 쏟아지고, 스크린 독점과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던 '군함도'와는 대조적이다.
쇼박스 최근하 팀장은 "시사회 관객들이 기사에 긍정적인 댓글을 다는 등 입소문을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택시운전사'의 흥행에는 관객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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