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훔쳤다" 참수된 日징병 한인 억울한 죽음 70년만에 위로

입력 2017-08-15 06:11  

"고구마 훔쳤다" 참수된 日징병 한인 억울한 죽음 70년만에 위로

日 오키나와戰 전몰자 위령비 '평화의 초석' 한인 희생자 15명 추가 등재

가족 못 만난 채 묻힌 유골 수두룩…韓정부 '유골찾기' 지지부진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제 말기 일본 남단 오키나와(沖繩). 박희태(당시 25) 씨는 고향인 경북 봉화에 딸과 부인을 남겨둔 채 이곳에 군속(군무원)으로 끌려왔다.

계속되는 전투로 극도로 식량이 부족해 영양실조로 죽어 나가는 사람이 속출하던 상황. 오키나와 각지를 돌며 참상을 온 몸으로 겪던 박 씨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민가의 고구마를 훔쳐 먹었다.

이 사실은 바로 들통이 났고,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고향에서 같이 온 3명의 조선인과 함께 박 씨의 목을 베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조국에 남겨 놓고 온 가족들을 뒤로 한 채 타향에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박 씨는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유골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15일 시민단체 '오키나와 한(恨)의 비(碑)'와 오키나와현 등에 따르면 박 씨의 이런 안타까운 죽음은 일본의 양심있는 시민들에 의해 조금이나마 위로받게 됐다.지난 6월 오키나와현 평화기념공원 내 위령비인 '평화의 초석'(平和の礎)에 뒤늦게나마 이름이 새겨져 이곳을 찾는 이들로부터도 위령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연간 38만명 가량이 찾는 이곳은 오키나와 전투의 희생자를 기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대표적인 장소다. 전몰자 모두를 기억하자는 뜻으로 1995년 세워졌다.

현재 24만명의 이름이 이 초석에 새겨져 있지만, 한반도 출신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평화의 비를 관리하는 오키나와현이 한반도 출신자들에 대해 유족 스스로 사망 상황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며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결과다.

일본 시민단체 '오키나와 한의 비' 측은 박희태 씨 유족을 부탁을 받고 2년여에 걸쳐 고인의 흔적을 좇고 유족의 진술을 정리했다. 소극적인 오키나와현 측에 계속 이름을 새겨 넣으라고 요구했고 결국 받아들여졌다.

유족들이 이 단체를 통해 오키나와현 측에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박 씨는 고향에서 일본인에 의해 전기고문을 당한 뒤 마음의 병을 겪었다. 마을 이장은 다른 7명의 이웃과 함께 박 씨를 일본에 보냈다.





현지에서 참수를 당했다는 슬픈 소식은 살아 돌아온 동료들을 통해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남겨진 아내와 딸은 가난에 시달리며 힘든 삶을 살았다.

고인의 딸은 "아버지가 징용을 간 뒤 일본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유골을 받지 못해 묘도 쓸 수 없었고 그동안 생사를 몰라 제사도 모시지 못했다"며 "일제는 유골 위치 등을 유족들에게 알려주고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오키나와현은 박 씨와 권운선 씨 등 한반도 출신자 15명의 이름을 이 비석에 새겨 넣었다. 오키나와 한의 비는 이 두 희생자를,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한인 피해자 13명을 평화의 초석에 올려줄 것을 각각 신청했고 오키나와현은 모두 수용했다.

이로써 비석에 새겨진 한반도 출신자 수는 462명이 됐지만, 일제 말 8천명 가량의 젊은 청춘이 끌려와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것에 비해 극히 일부일 뿐이다.

오키나와 한의 비의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활동가는 "평화의 초석에 새겨진 한반도 출신자의 이름은 전시 조선인의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의 책임 문제를 상기시켜준다"고 말했다. 이곳의 연간 방문자 수는 38만명이나 된다.

그는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죽은 뒤에는 버려진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한반도 출신 전몰자들의 이름을 평화의 초석에 새겨 넣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키나와현에서는 1945년 3~6월 미군과 제국주의 일본군 사이의 격전이 펼쳐졌다. 미군은 일본 본토 공격을 위한 보급기지 확보를 위해 오키나와를 공격했다.

일본군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미군에 자살공격으로 맞섰는데, 한반도에서 징용으로 끌려온 민간인도 자살공격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현지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한반도 출신자 상당수는 죽어서도 가족들을 못만난 채 어딘지 모를 곳에 묻혀 있다.

그나마 다행히 작년 일본이 제정한 '전몰자의 유골 수집 추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오키나와에서 전몰자 유족의 DNA를 수집하고 발굴된 유골과 대조 작업 중이지만,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을 어떻게 찾아줄지에 대해 한일간 협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작년 이 부처 차원의 올해 예산안에 유족의 DNA 감정 사업 관련 비용을 넣었지만, 정부 내 협의 과정에서 예산이 배정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 보조 : 이와이 리나 통신원)

bk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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