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면?…노통브의 잔혹동화

입력 2017-08-15 10:00   수정 2017-08-15 10:16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면?…노통브의 잔혹동화

신간 '느빌 백작의 범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2014년 가을 벨기에. 느빌 백작은 아르덴 지역에 소유한 플뤼비에성(城) 매각을 앞두고 있다. 해마다 10월 첫째 주 성에서 열어온 가든파티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비록 가문은 파산했지만 '접대의 귀재'인 느빌 백작은 마지막 파티를 성대하게 열어 손님들을 즐겁게 해줄 작정이다.

아멜리 노통브(50)가 2015년 발표한 스물네 번째 소설 '느빌 백작의 범죄'(열린책들)는 살인을 저지를 운명에 처한 한 귀족의 이야기다. 느빌의 얄궂은 운명은 한밤중 집을 나간 딸을 돌봐주던 점쟁이 로잘바의 말에서 시작된다. "백작님은 초대된 손님 하나를 죽이게 될 겁니다."

느빌은 그날부터 불면에 시달린다. 처음엔 소름이 끼쳤지만 곧 점쟁이의 예언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나중엔 초대손님 중 살해하기에 적합한 인물을 찾아 나선다. 고민에 빠진 느빌을 셋째 딸 세리외즈가 유혹한다. 자기를 죽여달라고.

"전 아빠를 우주에서 가장 좋은 아빠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가 질식해 가는 이 무(無)의 외피에서 절 해방시켜 주기로 하셨으니까요. 잊지 마세요. 아빠가 범하게 될 일, 그게 저에게는 사랑의 행위가 될 거예요!"

정서적 불감증에 빠진 세리외즈는 죽음으로써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세리외즈는 아버지가 살인자로서 의무를 수행하도록 돕는다.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도록 재차 돕는 역할도 세리외즈 몫이다. 옮긴이 이상해 씨는 "아멜리 노통브의 여주인공들이 늘 그렇듯, 주도권은 오롯이 그녀가 쥐고 있다"고 했다.






숲속에서 덜덜 떨고 있는 소녀를 구해준 점쟁이, 저주에 가까운 예언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느빌 백작, 죽음 충동에 이끌려 희생양을 자처하는 열일곱 소녀의 이야기는 한 편의 잔혹한 동화로 읽힌다. 죽음을 꿈꾸는 신비롭고 기이한 분위기의 캐릭터와 막판 반전이 영락없는 '노통브표' 소설이다.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소설은 여러 고전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여신의 분노를 풀고 전쟁에 나서기 위해 막내 딸을 산 제물로 바쳤다는 그리스 신화의 아가멤논 이야기, 결혼을 앞두고 살인을 저지를 운명임을 알게 된 주인공을 그린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아서 새빌 경의 범죄'를 현대적으로 변형했다.

실제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접대'에 능한 외교관 아버지를 둔 작가의 배경도 언뜻 엿보인다.

노통브는 재작년 현지 출간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늘 해외를 떠돌지 않고 벨기에에 터를 잡고 살았다면 어땠을지 한번 상상해 봤다"고 말했다. 초대 손님을 살해하는 데 대한 판타지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은혜롭게 행복감을 갖고 대하셨다. 반면에 난 초대 손님을 죽이는 것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들을 살해할까 봐 너무 두려운 탓에 사람들을 절대로 집에 초대하지 않는 거다. (웃음)" 144쪽. 1만1천800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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