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여기 보세요. 이것도 친환경, 저것도 친환경, 다 친환경이래요. 하지만 살충제 범벅 계란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어요."
17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매장에서 만난 주부 심 모(38·서울 마포구)씨는 포장재마다 친환경 무항생제 마크가 잔뜩 붙어있는 계란 판매대 앞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심 씨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대거 검출됐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지금까지 내가 일부러 비싼 가격을 감수하면서까지 믿고 사 먹었던 건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분노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브랜드별로 친환경 무항생제 마크 등이 붙어있는 것을 꼼꼼히 살펴보던 심 씨는 결국 어린 닭이 낳았다는 10개짜리 계란을 카트에 담았다.
심 씨는 "초등학생인 애들이 계란을 워낙 좋아해 안 먹을 수 없고, 그나마 제일 항생제나 농약을 덜 썼을 것 같은 상품을 골랐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매장에서 직접 세어본 계란의 브랜드 수만 10가지가 넘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친환경 무항생제나 식품안전관리기준(HACCP·해썹) 마크가 찍혀있었다. 친환경 마크가 찍혀있지 않은 상품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대부분 소비자들은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친환경 마크가 찍혀있으면 안심하고 사 먹었지만 최근 하루이틀사이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특히 어린 아이를 둔 주부들은 '살충제 계란'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조금이라도 안전한 계란을 믿고 사 먹을 수 있는 유통채널을 찾고 공유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주부 배 모(40·서울 은평구) 씨는 "그동안은 주로 대형마트 등에서 계란을 사 먹었는데 이번 사태가 터진 뒤 지인의 소개를 받아 인터넷으로 주문해 배달받을 수 있는 '진짜' 친환경 양계업자로부터 계란을 사 먹기로 했다"고 전했다.
배 씨는 개인적으로 양계농가에 만연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감안할 때 더이상 친환경 마크가 있어도 믿기 어렵다고도 했다.
배 씨뿐민 아니라 많은 주부들 사이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친환경 농산물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양심적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도 적지 않은 만큼 이번 사태로 인해 친환경 인증상품을 불신하는 것만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살충제 계란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밀식사육이라 볼 수 있지만 친환경 농가에서 생산된 계란에서도 살충제가 검출된 데 소비자들의 배신감이 큰 것 같다"며 "정부가 하루빨리 근본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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