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현실세계의 어두운 단면을 비추다

입력 2017-08-17 16:24   수정 2017-08-17 20:08

SF소설, 현실세계의 어두운 단면을 비추다

듀나·김보영·배명훈·장강명의 중편 작품집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SF소설은 언제나 아득한 시공간의 이야기일 뿐일까. 의미심장한 표제의 소설집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한겨레출판)는 지구 바깥 어느 별에 지금 이곳의 현실세계를 비추고 꼬집는다.

듀나·김보영·배명훈 등 한국 SF를 대표하는 작가들과 장르를 넘나드는 소설가 장강명이 중편 한 편씩을 냈다. 이들은 태양계 행성이나 위성을 하나씩 골라 모험담을 쓰기로 했다. 배경 설정만 정하고 시작한 소설 네 편은 모두 거대권력과 다수의 횡포를 고발하고 인간 본성에 대해 질문한다.

맨 앞에 실린 장강명의 '당신은 뜨거운 별에'는 금성 탐사에 파견된 천재과학자 유진과 그의 딸 마리의 이야기다. 유진은 '과학자들이 주인공이 되는, 보다 진지한 우주탐사 다큐멘터리 쇼'를 제안받고 금성탐사선에 탔다. 하지만 머리와 몸이 분리되고 감정까지 조종당하는 탐사선은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마리는 다큐멘터리 쇼 제작에 참여한 딸 마리와 암호를 주고받으며 자유의지를 찾기 위해 분투한다.

금성탐사의 실질적 주체는 탄산음료 회사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유인 우주탐사는 국가 차원의 추진 동력을 잃었다. 더 이상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지적 탐험도 아니다. 리얼리티쇼·중간광고와 결합한 상품일 뿐이다. 유진과 마리는 이윤을 위해 속임수를 마다않는 거대기업에 맞선다.

배명훈의 '외합절 휴가'는 지구의 식민지가 된 화성의 한 작은 도시에서 펼쳐진다. 시청에 일하는 은경은 2년마다 돌아오는 휴가 기간 당직 근무 중 비상상황에 맞닥뜨린다. '화성북반구연맹'에 속한 도시 17곳이 의회를 해산하고 독립을 선언한 것.

화성은 남을 짓밟으며 제 잇속을 챙기는 아귀다툼의 공간이다. 수백 개의 전략무기가 이미 발사된 채 화성 주위를 공전하고 지구인과 '화성 토박이' 사이의 차별도 존재한다.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는 우주선에 탑승한 AI(인공지능)의 시점에서 인간 본성을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주선 안에선 무자비한 폭력이 횡행한다. '인간적인 대우'를 요구하는 AI 컴퓨터를 상대로 성욕을 해소하려 하는 인간도 등장한다. "대체 나는 왜 인간 같은 지랄 맞은 걸 되고 싶어 했단 말인가?"

듀나의 '두 번째 유모'는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해왕성 근처를 배경으로 삼았다. 거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위성 트리톤에 사는 아이들 이야기다. 작중 인물 서린은 이렇게 말한다. "여긴 신들의 체스판이야. 너희는 그냥 말에 불과해. 심지어 무슨 말인지도 모르지. 말이 아니라 그냥 체스판의 먼지에 불과할 수도 있어."

주인공들은 거대 권력과 암울한 상황에 맞서 싸우는 일종의 히어로다. 김보영은 "서로의 작품을 보지 않고 썼는데도, 같은 공간이라는 설정을 공유하고 같은 시기에 집필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만한 통일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356쪽. 1만3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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