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국민식품'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데 따른 불안감이 번지는 것을 차단하려고 실시한 정부의 전수조사마저 부실하다니 어이가 없다. 정부가 빠듯한 일정에 맞추느라 원칙대로 무작위 샘플을 가져다 조사하지 않고 농장에서 골라 준비해 둔 계란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농장주 A씨는 CBS 라디오 뉴스쇼 프로그램에 나와 "(검사) 담당 직원들이 오지 않고 마을대표가 계란 한 판씩 가지고 마을회관으로 나오라고 했다. 닭 농장에서 임의로 모아준 계란을 한 번에 싣고 가서 조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닭에 살충제를 뿌린 농장 주인이, 자신의 농장이 아니라 살충제를 쓰지 않은 농가의 계란을 가져다줘도 조사 당국이 이를 알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17일 국회 상임위 현안보고에서 "전수조사의 일부 표본에 문제가 있어 121곳에 대해 재검사를 하고 있다"며 부실조사를 시인했다. 이런 부실한 조사라면 국민 불안을 덜어주기는커녕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정부는 전국 1천239개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 결과를 18일 발표한다. 전수조사는 전국의 전체 산란계 농장 1천456개 가운데 털갈이나 휴업 등으로 계란이 없는 곳을 뺀 모든 농장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번 전수조사의 목적은 한 가지다. 광범위하고 정확한 조사를 통해 '살충제 계란'에 대한 국민의 공포를 잠재우고 국민 먹거리 계란의 수급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해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런 목적이라면 소비자인 국민이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전수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검사원이 조사대상 농장의 사육장에 들어가 임의로 시료인 계란을 가져오는 것이다. 엉터리 시료로 백 번을 검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실조사 의혹을 산 농장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진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못 믿을 건 전수조사뿐만이 아니다. 주먹구구식 친환경 인증제도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살충제(농약) 성분이 조금이라도 나와서는 안 되는 친환경 무항생제 계란의 상당수에서 닭에 사용이 금지되거나 인체에 유해한 살충제 성분이 무더기로 나왔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17일 오전 현재 검사가 끝난 876개 농장(친환경 농장 683개, 일반농장 193개) 가운데 66개 농장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주목되는 것은 친환경 농장 인증을 받은 683곳 중 살충제나 농약이 조금이라도 나온 곳이 62곳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친환경 농장 10곳 가운데 1곳꼴로 '무늬만' 친환경 계란을 생산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이름만 '친환경 농장'이지 193곳 중 4곳에서 농약이 검출된 일반농장보다도 못하다. 친환경 인증제도를 믿고 일반 계란보다 두 배나 비싼 친환경 계란을 사 먹은 국민을 바보로 만든 셈이다.
친환경 인증 산란계 농장에서의 살충제 성분 무더기 검출은 이들 농장에서 살충제 사용이 빈번하다는 것을 뜻한다. 여름철 산란율을 떨어뜨리는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일상적으로 살충제를 쓰는 농장에 엉터리 친환경 인증을 해 준 책임은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와 실제 관리 감독 기관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있다. 산란계 농장의 친환경 인증은 민간기관에 위탁돼 있지만 농산물품질관리원이 민간 인증기관을 관리·감독하도록 돼 있어서다.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최초로 검출된 경기 남양주 농장의 경우 지난 2일 민간 인증기관이 시행한 무항생제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10여일 뒤 농식품부의 일제 점검에서는 닭에 사용이 금지된 맹독성 '피프로닐'이 검출됐다. 이러니 민간 인증기관의 인증 절차가 얼마나 날림으로 이루어지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관리 당국이 감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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