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재제작된 어보 4점 포함…"큰 영향 없다" vs "적신호 켜졌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덕종 어보 1점과 예종 어보 3점이 일제강점기에 다시 제작된 물품으로 드러나면서 문화재청이 추진 중인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주목된다.
문화재청은 2015년 환수 당시 1471년에 제작됐다고 발표했던 덕종 어보와 1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던 예종 어보, 예종비 장순왕후 어보, 예종계비 안순왕후 어보 등 4점이 모두 1924년에 제작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이 어보들은 1924년 종묘에서 일어난 사상 초유의 도난 사건으로 어보 5점이 사라진 뒤 복원된 것이다. 당시 조선왕실의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인 이왕직(李王職)은 조선미술품제작소에 제작을 지시했고, 이렇게 만들진 어보가 다시 종묘에 안치됐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재제작된 어보에 대해 "순종이 분실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했고, 새로 만든 어보로 위안제를 지냈다"며 "원품(原品)은 아니지만 모조품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이 어보들을 '재제작품'으로 명명했지만, 원품과는 여러모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성분 분석 결과, 15세기 어보 9점은 금이 60% 이상이었다. 그러나 재제작품은 금이 6% 이하에 불과하고, 구리가 70% 넘게 들어갔다. 박물관은 거북의 등 부분이 더 위로 솟아 있는 등 형태도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 어보들이 다시 제작됐다는 단문의 기사만 있을 뿐,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없는 상황이다.
이 어보들은 오는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 심사를 받는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에 포함돼 있다.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은 의례용 도장인 어보 331점과 직위를 하사할 때 내리는 교서인 어책(御冊) 338점으로 구성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등재 신청서 본문에는 669점의 제작 시점이 1411년부터 1928년까지로 뭉뚱그려 있어서 수정할 필요가 없지만, 부록에는 어보 하나하나의 제작 시점이 명시돼 있어서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이 워낙 많아서 어보 4점이 재제작됐다는 사실이 유산 등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서경호 서울대 교수는 "유네스코가 재제작품이 섞여 있다는 것을 과연 인지할지 모르겠다"며 "후대에 만들어진 어보가 문제가 된다면 목록에서 빼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중요한 사실은 어보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큼 중요한 기록인지 여부"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문화재청의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유산 등재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고 주장했다.
문화재계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신문 기사 검색을 통해 뒤늦게 재제작 사실을 알았다면, 다른 어보들도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어보 전체를 철저하고 정밀하게 조사해서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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