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25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현장을 가다

입력 2017-08-20 07:14   수정 2017-08-20 10:14

한중수교 25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현장을 가다

中, 상해임정 앞 행사 돌연 불허에 "사드 탓?" 뒷말

폭염에 지쳤던 답사단, 위안부 소녀상 보고 결기 살아나




(상하이·항저우·전장·난징=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8·15 광복이 72년째를 맞았다.

해방 공간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딛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분단을 극복하지 못했고,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대립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고민 속에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8월 16∼20일 4박5일 동안 중국 내 임시정부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 답사단은 10대 2명, 20∼30대 11명, 40대 이상 9명 등 22명으로 구성됐다.





◇ 사드 배치 이후 싸늘한 한중관계

답사단은 상하이(上海), 항저우(杭州), 전장(鎭江), 난징(南京)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피땀이 밴 이동 경로를 따라갔다.

처음 찾은 곳은 상해임시정부 청사였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임정이 머무른 공간이다. 답사단은 임정 청사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출정식을 할 예정이었지만, 중국 측 안내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정부 입장이 바뀌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루쉰공원(옛 훙커우공원) 내 매헌(梅軒) 윤봉길 기념관 앞에서 행사를 마쳤고, 변영태 주상하이총영사도 자리를 함께하지 못했다.

서동욱 상하이 한국문화원장은 변 총영사의 축사를 대독한 뒤 "중국 정부에서 총영사급이 참석하면 정치적인 행사가 된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양해를 구했다.

상하이 한인상회 관계자는 "올해 한중수교 25주년 기념행사까지 양국이 따로 연다더라. 5년 전 20주년 행사에는 당시 시진핑(習近平) 당시 부주석까지 왔었는데…"라고 아쉬워하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후폭풍이 꽤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답사단은 저장(浙江)성 자싱(嘉興)과 하이앤(海鹽)의 김구피난처에 이어 항저우로 향했다. 임정 항주유적지기념관은 사드 문제가 첨예했던 올해 초 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휴관했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문을 열고 있었다.

기념관 관장인 여단(呂旦) 씨는 "기념관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요즘 정세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분들이 많이 와 달라"며 고충을 에둘러 표현했다.






◇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숙연한 묵념

답사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참상을 기록해놓은 상하이사범대 내 위안부 역사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시실에는 피해자들의 이름과 생년, 증언을 비롯해 일본군이 사용하던 콘돔과 성병검사 기구까지 빼곡하게 전시돼 있었다.

이어 상하이사범대 원위안(文苑)루 앞 교정에 세워진 한중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지난해 10월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가 제막한 것으로, 앳된 조선 소녀와 중국 소녀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양이다.

청년들의 표정에 변화가 생긴 게 이때부터였다. 40도에 육박한 폭염에 무기력해지고 모기떼의 습격에 찌푸렸던 미간은 펴졌다. "잊지 말아야겠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답사를 이끄는 최태성 한국사 강사와 박광일 작가의 열정적인 설명이 이들을 거들었다.

박물관장이자 역사학자인 쑤즈량(蘇智良) 상해사범대 교수는 "소녀상을 설치할 때 일본 정부의 많은 방해가 있었다. 주 상하이 일본영사관에서도 항의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쑤 교수는 지난해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일본이 독일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보길 바란다. 도쿄에 위안부 동상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고 한 발언을 소개하며 "오는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한국, 중국, 필리핀 3국이 소녀상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 드넓은 양쯔강 바라보며 '내가 독립군이었다면…?'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80여 년 전 중국 인민에겐 난징대학살의 지옥도가 펼쳐진 곳이자 조선인에게는 독립운동 군사간부를 길러낼 수 있던 희망의 공간.

청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나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김현정(29·고고학 연구원) 씨는 "인문학도로서 직장이 불안정할 때면 '공무원 시험이나 칠걸' 하고 회의감을 느낀 적이 있다"며 "그러나 이제 꿈이 생겼다. 일제강점기 약탈적으로 발굴된 우리 문화재를 재발굴하는 작업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이윤정(33·중앙보훈병원 간호사) 씨는 "환자의 85%가 국가유공자인데 간혹 어르신들이 의료진을 막 대하면 힘들 때도 있었다"며 "이제 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재현(18·경북대1) 군은 "중국이 다른 나라의 역사를 이렇게 잘 보존했다는 게 놀랍다. 역사의식이 없었다면 싹 밀어버리고 재개발하지 않았겠냐"고 되물었고, 이종민(19·고려대1) 군은 "독립운동가들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널리 알리는 게 우리가 할 일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정다은(34·초등교사) 씨는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에 좀 더 관심을 두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빗속에서 넘실대는 양쯔 강을 내려다봤다. 비 맞은 얼굴에선 말갛게 김이 피어올랐다. 김학(25·강원대3) 씨는 "내년이면 졸업반이라는 걱정만 많았는데, 정작 제 뿌리를 수박 겉핥기로 알고 있었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벅차오른다"며 수줍게 웃었다.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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