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매스터 NSC 보좌관 입지 강화, 틸러슨·매티스 기회 얻어"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 스티브 배넌 전 수석전략가의 퇴출은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에도 적잖은 변화를 낳을 전망이다.
'미국 우선'을 앞세운 고립주의자 배넌이 물러남에 따라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전통적인 개입주의 노선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배넌과는 대척점에 있었던 '강골 군인' 출신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입지가 한층 튼튼해진 데 따른 것이다.
지난 2월 말 '러시아 내통 의혹'으로 낙마한 마이클 플린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은 맥매스터는 '안보 문외한'인 배넌이 NSC에 상임위원으로 참석하는 것이 처음부터 못마땅했다.
배넌은 미국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 유엔과 유럽연합(EU) 등 국제기후의 역할에 날 선 비판을 가했다.
특히 대외 정책에서 미국의 역할을 제한하려는 배넌의 고립주의 노선은 전통적인 개입주의자인 맥매스터는 물론 제임스 매티스 국방·렉스 틸러슨 국무 장관과도 충돌하는 지점이었다.
배넌은 유럽연합을 비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럽 내 국수주의 운동을 옹호했고, 영국의 '브렉시트'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배넌과 맥매스터는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를 지칭하는 용어 문제를 놓고서도 대립했다.
배넌은 '과격 이슬람 테러리즘'(radical Islamic terrorism)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지만, 맥매스터는 IS는 이슬람교를 앞세울 뿐 실제 행태는 종교와 무관한 테러단체라며 오히려 이 용어가 온건한 이슬람교도의 반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반대했다.
결국 맥매스터는 국가 안위를 결정하는 NSC에 '정치고문'이 상근 멤버로 참석하는 미 역사상 전례 없는 결정의 문제점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했고, 지난 4월 배넌을 NSC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맥매스터는 배넌의 끊임없는 견제에 시달렸고, 트럼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는 데도 실패했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비용 10억 달러를 부담하도록 하겠다고 하자, "미국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며 뒤집었다가 불벼락을 맞은 게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전화로 고함을 지르며 그를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배넌이 백인우월주의자 집회로 촉발된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 유혈사태의 여파로 퇴진함에 따라 맥매스터는 걸림돌 없이 안보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의 대외 군사 작전에 대한 내부 브레이크가 제거됐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대통령 공식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여는 국가안보회의에서 아프간 추가 파병 결정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배넌의 퇴진과 무관지 않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다니엘 플레카 외교·국방 담당 부회장은 "배넌의 퇴출로 인해 백악관 내 고립주의자와 개입주의자 간 힘의 균형추는 개입주의자 쪽으로 쏠리게 됐다"고 말했다.
배넌과 암암리에 적잖은 갈등을 빚어온 틸러슨 국무·매티스 국방 장관도 운신의 폭이 확대될 전망이다.
배넌은 지난 16일 진보성향 매체 '아메리칸 프로스펙트' 인터뷰에서 "수전 손턴(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국무부에서 쫓아내겠다.", "국무부와 국방부 동아시아 파트에 '매파'를 기용해야 한다" 등 두 부처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했었다.
지난 2월 국무부 부장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배넌의 반대로 낙마한 엘리엇 에이브럼스 전 차관보는 "국무부와 국방부가 외교정책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상적인 일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며 "두 장관도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 더 좋은 기회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NSC 부보좌관을 지낸 벤 로즈는 "배넌이 반(反)이민 행정명령 등 트럼프 대통령의 초기 의제를 제외하면 국가 안보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또한 오히려 배넌이 '백악관 바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배넌이 설립한 극우 성향 매체 '브레이트바트'의 전 대변인이자 정치평론가인 쿠르트 바델은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많은 면에서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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