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 유혈전쟁' 비난여론…"경찰에 살인면허 대신 마약문제 근원 해결해야"
두테르테 대통령 "마약 소탕전 멈추지 않는다…사망자 발생은 부수적 피해"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필리핀에서 고등학생이 마약 단속 경찰관들에게 사살된 것을 계기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벌이는 잔인한 '마약과의 유혈전쟁'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인명피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마약 유혈소탕전에 박차를 가하자 야권과 인권단체들은 '묻지마식' 마약용의자 사살을 멈추고 마약 확산의 근원인 빈곤 해결과 마약중독자 재활 치료에 정책의 주안점을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일 일간 인콰이어러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랜시스 에스쿠데로 상원의원은 "고등학생을 사살한 경찰관들은 살인자이자 범죄자"라고 비난하는 등 야당 의원들은 철저한 진상 조사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경찰은 지난 16일 필리핀 북부 루손 섬 칼로오칸 시에서 마약 단속을 벌이던 중 총기를 갖고 저항하는 키안 로이드 델로스 산토스(17)를 사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 폐쇄회로(CC) TV에는 산토스가 사살되기 전에 사복 경찰관 2명에게 끌려가는 장면이 찍혔다. 산토스가 당시 총기를 지니지 않았으며 경찰관들이 그에게 총기를 쥐여주고 달아나게 시켰다는 가족과 목격자들의 증언도 나왔다. 경찰이 산토스를 단속에 저항하는 마약범으로 몰아 사살했다는 정황이 짙어진 것이다.
인권단체인 '생명과 인권을 위한 궐기'는 "경찰이 제시하는 어떤 증거도 믿지 못한다"며 이번 사건을 '매우 야만적'이라고 비판했다.
또 "빈곤층은 생활보장 프로그램과 마약중독자 재활 등 사회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경찰에 '살인면허'를 줄 것이 아니라 마약 확산의 뿌리를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 1주일간 필리핀 경찰의 마약 단속 과정에서 산토스를 포함해 80명 넘게 사살되자 이런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청장 출신의 판필로 락손 상원 공공질서위원회 위원장은 경찰의 마약용의자 즉결처형에 대한 상원의 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조지프 빅토르 에헤르시토 상원의원은 "불한당 같은 경찰관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주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이용하고 있다"며 두테르테 대통령이 초법적 처형을 부추긴다는 점을 지적했다.
개리 알레하노 하원의원은 "경찰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개인 군대가 아니다"고 비판했고 치토 가스콘 필리핀 국가인권위원장은 "마약용의자 사살의 속도와 규모가 전례 없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필리핀 가톨릭 주교회의의 제롬 세실라노 공보국장은 "경찰이 광적인 상태"라며 "이성적이고 전문적으로 법 집행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여론이 일자 비탈리아노 아기레 법무부 장관은 국가수사국(NBI)에 경찰의 고등학생 사살 사건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이 사건에 관련된 경찰관 3명의 직무가 정지됐으며 칼로오칸 시 경찰서장은 보직 해임됐다.
에르네스토 아벨라 대통령궁 대변인은 경찰에 무분별한 공권력 행사의 자제를 주문했지만 마약용의자 즉결처형에 제동이 걸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 17일 "불법 마약 소탕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누군가 죽었다면 유감이지만 부수적 피해"라고 말하는 등 인명 보호보다는 마약 단속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4일에는 필리핀 북부 불라칸 주에서 경찰이 마약 용의자 32명을 사살한 것과 관련, "잘했다"고 칭찬하며 "매일 23명씩 사살하면 필리핀을 병들게 하는 것(마약)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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