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육필로 작성…"야당의 역사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
"좌파 정책이라도 과감히 끌어 안아야"…'보수 혁신' 강조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침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번 사태가 보수주의의 책임인 것처럼 야당이나 일부 시민세력이 보수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말로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사람은 보수주의의 가치에 배반한 행동을 한 정치인들이지 보수주의가 아니다"(2권 101쪽)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2일 출간하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주된 책임은 박 전 대통령 자신과 옛 새누리당에 있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는 당시 정치인들의 문제일 뿐 대한민국 보수주의가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이 전 총재가 3년에 걸쳐 직접 집필한 회고록을 들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내가 대선에 패배하여 패자가 되면서 승자의 역사만이 남고 패자인 야당의 역사는 역사의 기록에서 실종되고 기억조차 되지 않는다. 뒷날의 공평한 역사 평가를 위해서도 야당의 역사를 제대로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도 회고록을 쓰게 만든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1권 7쪽 머리말)고 했다.
무려 3천800쪽에 달하는 회고록은 1, 2권으로 나뉘어 구성됐다.
1권에서는 '대쪽 판사', '쓴소리 총리'라는 별명을 안겨준 그의 올곧은 성품이 유년기 시절부터 형성됐음을 대표적 일화를 통해 보여준다.
학창 시절 불필요한 농담으로 수업시간을 때우던 선생님에게 항의한 일, 젊은 남녀를 희롱하던 깡패에 맞서 싸우다가 코뼈가 부러진 일화 등이 소개됐다.
어릴 적부터 정의와 원칙의 편에 서서 자신의 주장과 하고 싶은 일을 관철하려던 태도는 법관과 중앙선관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로 일할 때 자신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 그의 술회이다.
2권에서는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삼고초려로 정치에 입문한 뒤 잇따른 대선 패배, 절치부심으로 자유선진당을 창당하기까지 정치인으로서 파란만장했던 삶이 온전히 녹아 있다.
필마단기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3김 청산'을 내세우며 벌였던 치열한 정치공방,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 대통령 후보로서 당해야만 했던 갖은 중상모략에 대한 '진실'도 담겼다.
14대 대선에서 자신에게 석패를 안긴 DJ(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이 전 총재는 DJ의 과거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 "보수는 대북 지원과 협력을 북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폐기와 체제 개방·개혁과 연계시키는 상호주의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2권 98쪽)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당시 DJ 정권이 휘두른 사정의 칼날과 의원 빼가기 등 야당 탄압 실상도 낱낱이 짚어낸다.
그는 탄핵 사태로 한껏 풀이 죽어 있는 보수정당에 부단한 혁신을 주문한다.
"보수의 이념과 정체성을 지키면서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자기 개혁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보수의 모습이다. 과거 좌파가 선호해온 정책이라도 그것이 정의에 반하지 않고 보수의 이념과 정체성에 저촉되지 않으며 국민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과감하게 도입하고 추진해야 한다"(2권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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