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청년드림팀' 실리콘 밸리 방문…"시스코의 '라이프체인저'에 감명"
"우린 특별한 사람 아닌 다른 특징 가진 사람"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신체적 장애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 어려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적을 보여줄 수 있고 잠재력이 있다면 그외의 것은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세계 최고 네트워크 기업으로 꼽히는 시스코의 장애인 고용정책 담당 최고 책임자인 팻 롬젝이 19일 실시간 영상으로 한국에서 온 장애청년 드림팀원 10명에게 들려준 말이다.
그는 시스코 시카고 본부에 근무하고 있어 새너제이 본사와는 화상회의 기기로 연결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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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젝은 시스코의 '라이프체인저(LifeChanger)'라는 장애인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고용(employ)', '권한 부여(empower), 변화(transform)'를 모토로한 이 프로그램은 단지 채용에서 끝나지 않고 이들이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장애인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가령 몸이 불편한 사람을 굳이 회사로 출근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만든 화상회의 기기는 회사에 있지 않아도 자기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어디에서 일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도 했다.
화상 회의 시스템외에도 클로즈드 캡션(폐쇄자막:청각장애인을 위해 실시간 으로 모든 음성 내용을 문자로 방송해 주는 서비스. 시청자가 원할 때만 화면에 문자가 나타나는 점이 특징), 스크린 리딩 기술 등 시스코의 기술을 이용해 장애사원들이 일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롬젝은 "라이프 체인저는 미국의 장애인 의무 고용률 7%(한국은 2%)를 관리하기 위해 처음 시작된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가동되면서 장애인의 작업 효율성은 220%로 매우 만족할만한 수준이 됐으며 회사에도 이익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매년 85∼150명의 장애인을 채용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청년드림팀의 한승진 씨(대구대 소프트웨어 공학과 1학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화상기기는 멈춤 현상이 잦고 자료 공유도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시스코의 기기는 선명하고 마치 실제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해 AI(인공지능) 기술로 화상회의에도 자동 자막 기능을 첨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장애청년들에게 열정과 도전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는 신한금융그룹과 장애인재활협회 주관으로 2014년부터 실시돼 올해로 13년차를 맞았다.
이번 실리콘 밸리 방문팀은 IT에 관심 있는 장애 학생들을 특별 선발해 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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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시애틀에 도착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을 방문하고, 16일 실리콘 밸리로 이동해 구글, 시스코, 페이스북, 애플 등지를 찾은 이들이 21일 실리콘 밸리의 한 찻집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났다.
태어날 때 병원측의 실수로 뇌성마비가 된 신홍규 씨(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는 "이 곳에 오기 전에는 미래의 기술이 장애인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를 알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이곳 기업들을 방문해 들은 말은 '장애인만을 위한 기술 혁신은 없다. 모두를 위해 좋은 기술을 만들면 그 혜택을 장애인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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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모든 사람 가운데 다른 특징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실리콘 밸리의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말이었다"며 그는 환하게 웃었다.
이들의 멘토로 동행한 강지훈 삼성SDS 부장은 "제도로서의 복지도 중요하지만, 길을 가다가 다리를 절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쳐다보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이곳에서는 그런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박사과정 연구원이었던 강 부장은 지난 2003년 연구실 폭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연구실 안전환경조성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는 이 '장애청년드림팀' 프로그램의 1기 멤버이기도 하다.
팀을 인솔한 신한금융그룹의 신윤진 사회공헌부 부부장은 "한국에선 좋은 기업이 큰 건물을 지으면 꼭 대형 회전문을 만들잖아요. 그런데 여기선 어느 회사를 가도 건물 입구에 회전문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아무리 낡은 건물이라도 문 옆에는 항상 장애인 전용 버튼이 있어서 그것을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신 부부장은 "장애인과 노약자에게 편리한 저상(底床)버스가 일반화돼 있고 장애인이 타고 내릴 때 운전기사가 도와 준뒤 '굿바이' 인사를 할 때까지 아무런 불평없이 마치 당연한 일인것처럼 몇 분이고 기다려주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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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부장은 "한국의 장애인 복지는 '네가 부족하니 우리가 좀 도와줄게'라는 호혜적 지원이라면 이곳(미국 혹은 실리콘 밸리)은 '네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테니 그 이후엔 알아서 해"라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그들의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이 뻔한 말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느냐"는 강 부장의 한숨 섞인 말이 길게 여운으로 남았다.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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