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통신원 = 미국 시카고 시가 도심 인근의 낡은 교량을 재정비하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하기로 하자 다리 밑에 텐트를 치고 지내온 노숙자들이 생존권을 주장하며 소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시카고 트리뷴 등에 따르면 시카고 시가 도심 미시간호변의 간선도로 '레이크쇼어드라이브'의 2개 다리를 재정비할 예정인 가운데 이곳에 텐트를 치고 지내온 약 40명의 노숙자에게 비상이 걸렸다. 공사가 시작되는 다음 달 중순까지 생활 터전인 텐트를 철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리뷴은 "오래전 건설돼 차가 지날 때마다 콘크리트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리는 교량이 운전자와 보행자는 물론 노숙자들에게 치명적 위험을 안길 수 있다는 사실을 노숙자들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카고 노숙자 연합'(CCH)을 돕는 변호인단은 "시가 교량 보수는 하더라도 다리 아래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노숙자들이 영구 퇴출당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렌스 다리 아래 살고 있는 노숙자 토머스 고든(58)은 "지금은 텐트가 있어도 보행자 통행에 불편이 없지만,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기면 우리가 텐트를 칠 공간이 없어진다"고 하소연했다.
트리뷴은 "이같은 딜레마는 시카고 도심 북쪽에 저소득층이 살 수 있는 저가 주택이 점점 더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자전거 친화 도시를 지향하는 시카고에 자전거 인구가 점점 더 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CCH는 "노숙자들에게 영구 주택을 마련해주기 전에 공사 시작을 이유로 철거부터 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사가 끝난 후 노숙자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시카고 시의 다리 재정비 계획에는 여러 해 동안 그곳에 살아온 노숙자들을 쫓아내려는 의도가 포함돼있다"며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시카고 시는 "노숙자들의 영구 주택 마련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지난 5월 다리 재정비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CCH 측과 세부 사항을 논의하려 했으나 CCH 측이 만남에 응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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