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필사의 맨손 구조…7개월·7세·11세 형제 차례로 구조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21일 고급 휴양지로 유명한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의 이스키아 섬에서 규모 4.0의 지진이 일어나 2명이 숨지고, 약 40명이 다쳤다.
이탈리아는 1년 전인 작년 8월24일 규모 6.0의 강진이 중부 산간 지대를 뒤흔들며 299명이 사망한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지진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며 다시 한번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
하지만, 생과 사가 교차하는 재난 현장에서 7개월, 7살, 11살 어린 삼 형제가 지진 발생 16시간에 걸쳐 시차를 두고 모두 극적으로 구조되자 이탈리아 전역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일제히 환호했다.
생후 7개월 된 젖먹이 파스콸레 마르몰로가 지진 발생 7시간 만인 22일 새벽 4시에 별다른 외상 흔적 없이 가장 먼저 잔해 더미에서 구조돼 초초하게 발을 구르던 엄마 품에 무사히 안겼다.
7살 살 마티아스는 그로부터 7시간 뒤인 오전 11시께, 맏형 치로는 마티아스가 구조된 지 2시간여가 지나 가장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이 한 명씩 구조될 때마다 무너집 집에서 먼저 빠져나온 뒤 아이들의 생환을 초조히 기다리던 형제의 부모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구조 관계자들과 주변에서 초조히 구조 작업을 지켜보던 마을 주민, 취재진도 환희의 박수로 꼬마들을 맞이했다.
특히 가장 마지막으로 구조된 맏형 치로는 지진 당시 방에서 함께 있던 바로 밑의 동생 마티아스를 손으로 감싼 채 침대 밑으로 함께 들어가도록 해 사실상 동생의 목숨까지 구한 것으로 밝혀져 '꼬마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스키아섬 경찰 지휘관 안드레아 젠틸레는 "치로가 마티아스를 침대 밑으로 잡아 끌었고, 빗자루 손잡이로 잔해를 계속 두드려 구조대에게 위치를 알렸다. 사실상 그가 두 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라며 꼬마 영웅의 기지와 침착함을 칭찬했다.
구조대는 치로의 신호 덕분에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매몰 위치를 파악하는 한편 잔해 틈으로 물을 건네주고, 계속 말을 시켜 형제를 안심시켰다. 대원들은 이어 추가 붕괴를 우려해 맨손으로 조심스럽게 잔해를 치운 끝에 구조 임무를 완수했다.
구조대 관계자는 "형제의 매몰 위치를 덮고 있는 지붕이 붕괴할까 봐 중장비를 동원하지 못해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세 형제를 모두 구해낸 것은 기적"이라고 감격을 숨기지 않았다.
ANSA통신에 따르면 잔해에 맞아 오른쪽 발가락 골절상과 여러 군데 찰과상을 입은 치로는 구조 직후 이송된 병원 관계자에게 "주변 모든 것이 무너질 때 동생 마티아스를 꼭 껴안고 있었고, 구조대가 왔을 때 동생을 먼저 밀어서 내보냈다"고 말했다. 11살 어린이답지 않게 마지막 구조 순간까지 동생을 먼저 생각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삼 형제가 입원한 병원 측은 치로의 두 동생의 경우 부분적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을 뿐 양호한 상태라고 밝혔다.
한편, 이들 삼 형제는 전날 저녁 9시께 이스키아 섬 북부 카사미촐라 일대를 강타한 지진으로 거주하던 이층집이 붕괴하며 잔해더미 아래 갇혔다.
네째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알려진 아이들의 엄마는 지진 당시 욕실에 있다가 욕실 창문을 통해 가까스로 빠져나왔고, 아빠는 부엌에 있다가 지진 직후 도착한 구조대의 도움으로 잔해 더미에서 일찌감치 탈출했다.
구조대를 도와 맨손으로 잔해 더미를 헤치느라 손을 다친 삼 형제의 아빠 알레산드로는 "끔찍한 밤이었다.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며 가족의 목숨을 구해준 구조대의 헌신에 거듭 감사를 표현했다.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총리는 맨손 작업을 마다하지 않은 채 필사의 노력으로 삼형제를 구해낸 구조 당국에 직접 전화를 걸어 치하하고, 생환한 삼 형제에게 축하를 전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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