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 부부의 논픽션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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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잘나가던 엔지니어였던 남자는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됐다. 그는 가족에게 해고 사실을 차마 전하지 못했다. 해고된 다음 날에도 출근하듯 집을 나선 남자는 저녁까지 회사 주변을 맴돌았다. 차 안에 틀어박혀 먹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매일 그렇게 보내던 끝에 그는 '증발'을 택했다. 말끔히 면도를 마치고 출근하는 복장으로 집을 나선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레나 모제와 사진작가 스테판 르멜 부부가 일본 도쿄 산야(山谷)에서 만난, 노리히로라는 가명을 쓰는 중년 남성의 10년 전 과거다.
산야는 일본의 대표적인 빈민굴이다. 골목은 쓰레기와 지린내와 술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일본 정부는 지도에서 이 지역명을 아예 지워버렸다. 택시기사들도 산야로 가달라는 요구만큼은 뿌리친다. 평범했던 일본인들이 빈곤과 고독, 위험, 죽음이 도처에 도사리는 이곳으로 숨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매년 10만 명이 사라진다. 이 중 8만5천 명 정도가 '자발적 실종', 스스로 사라진 사람들이다. 2008년 사라지는 일본인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프랑스인 부부는 도쿄와 오사카, 후쿠시마 등 일본 전역을 5년간 탐사했다. 그 기록이 국내에 출간된 논픽션 '인간증발-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책세상)이다.
책은 빚, 파산, 이혼, 실직, 낙방 등을 겪으면서 수치심과 괴로움,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증발'한 이들의 다양한 초상을 담아낸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이들의 선택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일본의 연간 자살자 수는 3만3천여 명에 달했다. 매일 집계되는 자살자 수만도 90명이다.
세계 3위 경제 대국에서 발생하는 '증발'과 '자살'은 유달리 못났거나 심약한 개인의 탓일까. 저자들이 만난 실종자가족지원협회 후루우치 사카에 협회장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본인들은 마치 약한 불 위에 올라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다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린다." 책은 1990년대 '버블 경제' 붕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마다 사라지거나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했다는 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과거를 지운 채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죽음의 땅' 후쿠시마로 흘러들어 가는 이야기에는 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책은 야반도주를 지원하는 업체, 실종자들을 찾아 나서는 사설탐정 등 '인간증발' 주변의 풍경도 담고 있다.
일본에서 벌어진 일들이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인간증발'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이주영 옮김. 256쪽. 1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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