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로 변신한 美 철학자 이야기 '손으로, 생각하기'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흔히들 몸을 쓰지 말고 머리를 쓰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노동을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으로 구분 짓고 전자를 더 낮잡아 보는 시선이 깃들어 있다. 머리 쓰는 일의 생산성이나 성과가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에서 일하던 매튜 크로퍼드도 전형적인 '머리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시카고대에서 정치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몇 차례 실패 끝에 교직의 꿈을 접었다. 당장의 생계를 고민하는 대신, 아파트 지하실에서 1975년식 혼다 CB360 오토바이를 개조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이후 은사 권유로 싱크탱크 면접에 응시, 합격했지만 "넥타이가 노예의 징표처럼 느껴져" 결국 사직했다. 그는 허름한 벽돌창고를 빌려 본격적인 모터사이클 정비업을 시작했다. 5개월간 받은 월급은 장비들을 사는 데 쓰였다.
'손으로, 생각하기'는 육체 노동자가 된 지식 노동자의 작업 기록이자, 손과 몸을 쓰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전하는 책이다.
저자는 연구소보다 정비소에서 일할 때 더 많은 지적 능력이 필요했다고 강조한다. 낡은 바이크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수리하는 작업은 많은 지식과 정보, 여기에다 경험에서 비롯된 직감이 있어야 가능하더라는 이야기다. 관련 직종의 기능인들과 품앗이 작업을 하면서 얻는 소속감, 유대감은 사회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책은 문명의 눈부신 발달과 넘쳐나는 정보에도, 집에 있는 소형 가전 하나 제 손으로 고치지 못하는 인간이 얼마나 의존적인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인터넷을 통해서는 못을 박을 수 없다"는 경제학자 앨런 블라인더의 지적은 인상적이다.
저자는 기능인으로 사는 삶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다만, 육체노동을 깎아내리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점, 4년제 대학을 졸업해 칸막이 사무실에서 사는 것만이 최선의 길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것이 정보화하는 세상에서 손과 몸을 놀려 축적한 자신만의 감각적인 지식을 가지라는 메시지가 귀에 와 꽂힌다.
아래는 젊은이에게 건네는 저자의 조언이다.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위해 마지못해 억지로 어렵게 공부할 필요가 없다. 사무실에 틀어박혀 정보 시스템의 조작자나 창조성이 떨어지는 단순한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자립적인 기능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더 만족스러울 것이다."
원제 '숍 클래스 애즈 솔크래프트'(Shop Class as Soulcraft). 윤영호 옮김. 288쪽. 1만4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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